을유(乙酉 ) 해방과 제주 젊은이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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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흡/제주도교육의정회 이사장

일제의 질곡(桎梏)에서 벗어난 제주의 신진 젊은이들은 먼저 무슨 꿈을 간직했을까! 해방이란 환희 속에 일본에서 대학이나 전문학교를 다녔던 학병(學兵)출신들은 귀향한 본도 최고 지성인들이다. 이들은 서로 모여 고민하기를 “미래를 짊어질 제주의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꿈을 심어주는 일이 급선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해방공간에서 이들이 끼친 영향은 4?3으로 이어지는 부정적인 면과 한편으로는 당시 문맹사회를 일깨운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당시 산북 ‘제주-성내’에서 활동한 하나의 그룹이 바로 로고스-모임이다. 일제강점기 도일(渡日)한 제주 출신 대학생들이 해방 후에 귀국하여 새로운 조국에 헌신하려고 뭉친 모임을 처음 로고스회라고 하였다.

 

이들은 정식으로 1946년 3월에 로고스 ‘Logos’모임을 창설했다. 로고스란 그리스 철학에서 언어를 매체(媒體)로 하여 표현되는 이성(理性), 또는 그 이성의 작용을 말한다. 회원은 강순현(姜淳現, 납읍), 김봉현(金奉鉉, 금악), 김성만(金聖萬, 금성), 김인호(金仁灝, 남원면 신흥), 문국주(文國柱, 도두), 문태오(文泰午, 도두), 양명률(梁明律, 노형), 양세민(梁世民, 청수), 이경수(李慶守, 인성), 현평효(玄平孝, 봉성) 등이었음을 오늘에 알려졌다. 모임이 대표격은 양명률이었다.

 

이들은 제주에 중등학교의 설립을 첫 목표로 뭉쳤다. 우선 ‘학술강습회’로 출범하여 초등학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국어와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 당시 제주농업학교만이 유일한 중등교육기관이어서 강습회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래서 동 5월경 당국으로부터 ‘제주제일-중학원’으로 인가를 받아 제주북교의 잔여 교실을 빌어 운영했다.

 

얼마 후 오현단의 제주농업학교의 구교사로 옮겨 오현중(五賢中)학교라 개칭, 일제시대 전라남도 도의원을 역임한 황순하(黃舜河, 조천)를 설득시켜 자금을 마련해 운영해 갔다. 이 무렵 반탁과 찬탁으로 로고스회원들은 이념논쟁으로 불붙었다. 이어 민주주의민족전선(약칭 民戰)을 조직하니 로고스 회원들은 의견이 영분되었다. 민전에 적극 동조하자는 정치지향적인 젊은 인사와 그렇지 않은 비정치적 인사들이다. 1947년 제주북교에서 시작된 3?1시위로 대표 양명률을 따르는 우파와, 문화부장 김봉현을 따르는 좌파 급진파의 주도로 전도의 파업을 단행, 행정력이 마비되는 극한상황으로 치달았다. 회원들은 일부 미군정의 체포령에 맞서고 일부는 밀항으로 도일, 또 일부는 교육계로 나가거나 공직에 참여했다.

 

산남 서귀포에서는 해방된 조국에 기여하자는 뜻에서 ‘형설(螢雪)-모임이 태동되었다. 이 무렵 인문중학교의 출현을 갈망하던 신진 청년들 이갑출.이도백.송태삼.고중호.김태봉.이창옥 등의 먼저 강습소 형태로 '형설중학원(螢雪中學院)'을 설립했다. 이들 청년은 서귀포 지역의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 계열로서 급진적 청년들도 포함했다. 서귀실수학교의 일부 학생과 일반 청년들 중 희망자를 입학시켰다. 이 강습소는 남제주농회 창고(송산동사무소 터)를 임대하여 배움에 굶주린 유능한 청소년들을 가르쳤으니 흔히 ‘창고(倉庫)-중학원’이란 별칭이 붙었다.

 

강사는 송두경(서귀포, 과학).조몽구(성읍, 사회).고중호(영어).김태봉(수학).이창옥(변론) 등이 담당했다. 처음 항일의지가 강한 좌우연합체로 운영하던 것이었는데 찬탁과 반탁으로 대립하더니 학원 분위기는 점차 좌경화로 기울었다. 한편 서귀실습학교는 1945년 10월 2일 서귀농업중학교로 승격하여 수석교사 이기휴(李基休)에 의해 운영, 1946년 10월 3일에 이 2년제의 서귀실수학교는 운영난에 의해 형설(螢雪)중학원을 흡수해 당시 5개 학급인 3년제의 서귀초급중학교로 개설했다.

 

서귀중학교의 분위기는 나이층이 많은 형설중학원 출신들에 의해 좌지우지(左之右之)되었다. 1947년 3?1시위사건 이후 교사와 학생들이 좌우의 대립이 격화되어 학생들은 서로 난투극이 벌어져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제주도지사 박경훈(朴景勳)이 중학교에 들려 학부모 총회를 소집해 학원 정상화를 호소할 정도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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