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鍾)을 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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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94세가 되는 칠보사 조실 석주(昔珠) 스님이 새해 아침 법문으로 잡아함경(雜阿含經)의 구절을 인용했다.

“바람을 마주하여 먼지를 털면 그 먼지가 다시 자신에게로 오듯이 미움을 미움으로 대하면 그 미움은 반드시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미워하는 사람이나 미움을 미움으로 대하는 사람은 그 누구든 재앙을 벗어나지 못하나니 원망을 원망으로 갚지 말라.”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제야(除夜)에는 항상 아쉬움과 희망이 교차한다.

시인 김영랑은 ‘제야’를 “한해라 기리운 정을 묻고 쌓아 흰 그릇에/그대는 이 밤이라 맑으라 비사이다”라고 노래했다.

▲제야에는 서울 종로 보신각종이 33번 울린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종소리다.
조선시대에는 이 보신각을 종루(鐘樓)라고 불렀고 그 역할도 지금과는 달랐다.

종루에서는 밤 10시에 28번의 종을 쳤다.
하늘의 28개 별자리를 의미했는데 이를 인정(人定)이라 했다.

그러면 도성의 성문이 닫히고 사람들의 통행이 금지됐다.
새벽 4시경에 치는 것을 파루(罷漏)라 했다. 불교의 33천(三十三天)의 의미를 담아 33번을 쳤다. 그러면 다시 성문이 열리고 통금이 해제됐다.
도성에 화재가 발생해도 종을 쳤다.

▲제주목관아지 복원 1단계 사업이 이제 마무리되어 새해 1월 22일 준공식을 갖는다고 한다.

조선시대 제주목사의 집무실인 홍화각과 집정실인 연희각 이외에 우연당.귤림당 등등이 완공됐다. 앞으로 2단계 사업으로 망경루 등을 복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런데 관덕정 옆 ‘수령이하개하마(守令以下皆下馬)’비 옆 제주목관아의 대문루 2층에는 종루가 있었다.

1890년대 사진에도 뚜렷이 나타나 있는 이 제주성 종루의 종은 보신각종보다 작았으나 당시 여러 가지 기능이 유사했다고 한다.

이 종루가 복원되어 제주에서도 제야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선시대에는 섣달 그믐날을 속칭 ‘작은 설’이라 하여 이날엔 무사히 1년을 보낸다는 뜻으로 사람들이 서로 묵은 세배를 나누었다.

이날 밤 사찰에서는 108번의 타종을 하는데 이를 제야의 종이라고 불렀다.
절에서 종을 치는 것은 종소리가 법계에 두루 퍼져 번뇌를 끊고 지혜가 자라며 깨달음에 이르기를 발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한해의 걱정과 아픔을 모두 날려보내고 다시 떠오르는 2003년 새해를 기다리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참 고마웠던 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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