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와 한국인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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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호. 시인 /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캐나다 세계 빙상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김연아의 미소를 보며 한국인의 미소란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완벽한 경기를 마치고 난 다음의 무념무상한 미소, 시상대 위에서의 미소, 귀국 후 보여 준 미소 등은 각기 다른 것이지만 그의 독특한 미소가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일촉즉발의 남북 긴장이나 국내 정치정세의 복잡다단함을 일거에 해소하는 것이었다.

한국인에게 과연 언제부터 미소가 있었을까. 역사적으로 돌이켜 보면 대개 세 가지 정도의 미소를 떠올려 볼 수 있다. 우선 신라의 수막새에 새겨진 신라여성의 미소가 있다. 소박하고 진솔하다. 마음씨 좋은 시골 아낙네 같다. 사심이 없어 보이는 그 미소를 다시 눈여겨 살펴보니 뒷꼬리가 약간 올라간 것이 김연아와 비슷하다.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여성의 미소로 보이는 경주 수막새의 미소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오래 된 한국인의 미소일 것이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서산 마애삼존불의 미소이다. 여기에는 백제인의 미소가 담겨 있다. 소박한 충청도 남성을 연상시킨다. 느긋하고 여유가 있어 보인다. 서민적이고 친근한 느낌도 불러일으킨다. 위압적인 면이 하나도 없는 이 삼존불로 보아 당시 부처와 대중의 관계가 매우 친밀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반가사유상의 미소이다. 그 자세나 형태미에서 반가사유상은 한국적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불상이다. 잔잔하면서도 장엄하다. 여기서 장엄은 크기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미소가 거느리는 사유의 장엄함이다. 감은 것 같기도 하고 뜬 것 같기도 한 경계에서 고통 받는 중생의 아픔을 넉넉하게 포용하는 미소이다.

반가사유상은 삼국통일 당시에 겪어야 했던 중생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생사의 경계에서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우는 것 같기도 한 영원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한국의 여러 문화유산 중에서 서양인이 가장 감탄하는 것이 반가사유상이라고 한다. 반가사유상이 보여주는 평화로운 미소는 서양의 조각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서양인들에게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지옥문 앞에 턱을 괴고 앉아 있는 ‘생각하는 사람’은 신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고뇌이다. 로댕의 조각에는 고통은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평화는 없다. 아무리 평화를 갈망한다고 할지라도 거기에는 투쟁과 갈등으로 심판받는 인간의 숙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조물주인 신과 인간의 경계가 분명하고 원죄를 먼저 설정하지 않고서는 그 신앙적 체계를 세울 수 없는 서양인들에 의해 반가사유상의 미소와 같은 조각은 만들어질 수 없을 것이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형상이나 지옥문 앞에 심판을 기다리는 인간의 모습이 그들의 영혼에 새겨진 인간의 얼굴인 것이다.

김연아가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보여 준 미소는 앳된 소녀의 것이었다면 이번에 보여준 미소는 한층 성숙한 여성의 것이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완벽한 연기가 만들어낸 무념무상의 미소이다. 그의 미소는 부드러우면서도 겸손하고 겸손하면서도 당당하다. 그 부드러움 뒤에는 강렬함이 있고 겸손함 속에는 고난도의 훈련을 이겨낸 극기의 정신이 배어 있으며 당당함 속에는 어떤 시련도 극복하고 승리한 인간의 무한한 기쁨이 들어 있다. 여기서 김연아의 미소를 논하는 것은 단순히 그를 영웅시하거나 그를 예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의 미소에서 한국인이 지닌 시련 극복의 의지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이다. 그의 미소에서 앞으로 새로운 세기를 이끌어나갈 한국인의 역동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급한 사람들은 김연아의 브랜드 가치가 6조원에 달할 것이며 이는 단군 이래 최대의 것이라 과장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제 김연아 이야기는 그만하자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의 미소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인의 심성이 지닌 본연의 모습이며 그것은 그동안 잊고 살았던 우리 자신의 얼굴이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말로 한 때 후진적 열등감을 위로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시상식장에서 캐나다 합창단이 애국가를 한국어로 부를 때 느끼는 감동은 세계 속의 한국을 실감하게 한 순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김연아의 역사적 쾌거는 그만의 것이 아니다. 김연아의 우승이 보도된 다음날 지하철에서 우연히 한 나이든 어른이 ‘김연아 정말 대단하잖아’ 하고 젊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되풀이 말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보았다. 그 어른은 무언가 젊은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싶은 것이 있었을 것이다. 김연아의 미소를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은 그러한 장면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부드럽고 겸손하고 당당한 한국인의 미소가 더 크게 세계를 향해 떨쳐나가 우리 모두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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