羊처럼 사는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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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유전적으로 항상 공격의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자기 영역 유지와 성적(性的)인 도태, 그리고 종족을 지키기 위한 경우가 아니면 같은 종류끼리는 싸우지 않는다. 근대 동물 행동학의 창시자인 콘라드 로렌츠가 한 말이다.

로렌츠의 동물연구 업적은 노벨 생리 의학상을 수상한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한마디로 동물의 선천적인 반응은 공격이다. 다른 종은 물론 같은 종끼리도 항상 공격적 자세를 견지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딱 하나 예외적인 동물이 있다. 바로 양(羊)이다. 양은 서로 다투지 않고 다른 동물과도 싸우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갈 뿐이다.

불만을 속으로 삭이는지는 몰라도 어떤 경우에도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없다. 꼭 하나로 무리지어 다니므로 편가르기란 있을 수 없다. ‘네편’ ‘내편’이 없으므로 다툴 일도, 싸울 일도 없다.

오히려 자기 희생만 있을 뿐이다. 양털은 보온력이 뛰어나 모직물의 원료로 사용된다. 살아서는 일년에 한 번 온몸의 털을 아낌없이 내어주고, 죽어 제물이 되어 준다.

양이 가축으로 길러진 연대는 서기전 6000년경으로 추정되고, 우리나라에는 고려 때 금(金)나라에서 들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부터 동.서양 구분없이 인간을 위한 신(神)의 제물로 사용된 점은 놀랍게도 일치한다.

계미년(癸未年) 양의 해 새 아침이 밝았다. 양의 정직함과 순수성을 모두가 되새겨 보는 해가 됐으면 한다. 그렇다고 양처럼 무엇을 위해 희생하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적어도 남을 해치지 않고 무엇이든 서로 도움을 주는 온정이 넘치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특히 올 한 해만이라도 양두구육(羊頭狗肉)의 고사성어가 자취를 감췄으면 좋겠다. 양의 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파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야 하겠다.

겉모양은 그럴싸하나 속은 변변하지 않고 선전은 버젓하나 내실이 따르지 않는, 외모만 양의 얼굴을 한 사람이 발붙이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겉과 속이 모두 양과 같은 사람, 그런 순수한 사람들이 넘치는 세상이 요원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속고 속임의 만연이 상호 불신을 낳고 분쟁의 씨앗이 된다. 올해는 모두 내가 조금 손해보더라도 남을 먼저 생각하는 양의 모습을 닮는 해가 됐으면 한다. 남을 속이지도, 헐뜯지도 않는 정직하고 순수하게 사는 그런 한 해가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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