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자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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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
해마다 6월이 오면 제일 먼저 6.25전쟁의 기억이 떠오른다. 이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는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처럼 아득한 옛날에 일어난 전쟁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6.25전쟁은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현재 진행 중이다. 그 명칭도 6.25사변에서 한국전쟁으로, 그리고 6.25전쟁으로 변화하였다.

1950년 6월 25일 유난히 화창한 일요일이었다. 콩볶는 소리(따발총 소리)는 요란한데 라디오에서는 “국민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목소리만 흘러나왔다. 총소리는 요란한데 대통령은 아무 일 없다고 하니 38선이 지척인 춘천의 시민들은 갈피를 못 잡고 피난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 날 피난민이 물밀듯이 밀려오고 총알이 마당에 떨어지고 나서야 피난을 서둘렀지만 때는 이미 늦었던 것이다.

비상식량으로 미숫가루를 만들고 우리 네 자매들은 꼬까옷으로 단장하였다. 아마도 잠간 나들이 떠나는 것으로 착각하지 않았나 싶다. 대로는 위험하다하여 산길, 들길로 가던 피난길의 산천은 녹음방초 우거지고 뻐꾸기소리, 꾀꼬리소리 등 온갖 새들의 지져 김으로 하여 천국이 따로 없었다. 뒤에서는 전쟁이 쫒아오고 눈앞에는 천국이 펼쳐지는 이율배반의 계절이었다. 처음에는 신나서 달려가던 피난길은 차츰 고행길이 되었다. 맏이인 내가 아홉 살, 그 다음이 여섯 살, 네 살, 두 살이었으니 나는 차라리 어른 취급을 받으며 걸었다.

청평의 솔이 마을에 이르자 서울이 점령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 후 진행된 상황은 필설로 다하기 어렵고 우여곡절 끝에 춘천으로 돌아왔을 때는 엄마와 나 단 둘만 남았다. 인민군 치하의 춘천은 아비규환의 생지옥이었다. 하늘에서는 쉴 새 없이 폭격이 계속되고 어른들은 부역에 끌려가서 집에 홀로 남아 방공호로 달려가는 일을 되풀이하였다.

미쳐 방공호로 피신하지 못했을 때는 두 엄지손가락으로 두 귀를 막고 나머지 네 손가락 두 쌍으로 두 눈을 누르고 솜이불을 뒤집어썼다. 폭격에 귀가 멀고 눈이 튀어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숨이 컥컥 막히는 무더운 여름에 폭탄의 파편을 막을 수 있다는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고역쯤은 죽음의 공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여름이 가자 드디어 국군이 들어왔다. 시민들은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나가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열렬하게 환영하였다. 그러나 전쟁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1.4후퇴로 매섭게 추운 겨울에 또 피난길에 올라 서울을 거쳐 신갈리 쯤 갔을 때는 중공군과 맞닥뜨렸다. 중공군은 심리전이라 하여 밤이면 구슬픈 피리소리를 흘려보냈다. 꼭 귀신이 곡하는 소리 같아서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다. 중공군은 흰 앞치마 같은 것을 머리에 두르고 다니는 위장전술을 썼으므로 무고한 피난민들이 중공군으로 오인 받고 폭격당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1953년 6월 휴전이 되어 춘천으로 돌아와 학교에 가자 가족이 온전하게 살아남은 아이는 거의 없었다. 우리는 모두 결손가정 출신이 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울지 않았다. 상처는 가슴 깊숙이 담아둔 채 질서를 찾아갔다. 그러나 누군들 그 상처를 잊을 수 있었겠는가? 6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6.25전쟁의 기억은 어제일 같이 생생할 뿐만 아니라 그 상처는 소금을 뿌리 듯 쓰라리다.

올해가 휴전한지 꼭 60년이 되는 환갑 해다. 그 동안 대한민국의 발전과 번영은 눈부신 바 있다. 이에 취해서 지금 우리는 평화기로 착각하고 살고 있는 감이 있다. 북한의 도발에도 면역이 되어 그러려니 귓등으로 듣고 통일에 대한 의지도 흐려져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공염불이 되어가고 있다. 6.25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최대의 국제전쟁으로 부상자 빼고도 쌍방의 군인 전사자만 240만 명이었고 민간인 사상자는 헤아리기도 어려웠다. 남북한 모두 폐허로 변했고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으면서 상호불신의 골이 깊어지는 등 정신적 피해도 컸다. 이 전쟁은 통일을 이루어야 끝나는 전쟁이다. 6월 보훈의 달을 맞아 6.25전쟁의 아픔을 되새기고 통일의 의지를 다지면서 현재도 진행 중인 전쟁임을 결코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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