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대정면사무소...제주 관청의 초기건축 양식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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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무암을 주재료로 신축...도내 면사무소 건물 중 유일하게 보존
조선시대 행정구역이 제주목·정의현·대정현으로 나눠졌던 제주도는 일제시대인 1915년 도제(島制)가 실시되면서 1읍 12면으로 재편됐다.

면(面)은 지방행정의 하급기관으로서 공공사무를 자체적으로 처리하게 됐다.

대정면사무소는 원래 대정관아 소재지이자 ‘대정골’로 불리던 인성리에 이었다. 홍살문 거리에 있었던 향청(鄕廳) 건물을 사용했다.

일제가 1912년부터 신작로(新作路:일주도로)를 개설하기 시작하면서 경제 중심은 항구가 있는 모슬포로 옮겨졌다.

대정면사무소도 1933년 상모리(현 대정초등학교 옆)로 옮겨져 모슬포는 대정 고을의 중심이 됐다. 당시 면사무소는 일본식 기와 건물에 들어섰다.

오승국 4·3평화재단 연구원이 쓴 ‘제주4·3의 진실과 모슬포’를 보면 4·3이 발생지 18일 뒤인 1948년 4월 21일 무장대가 대정면사무소를 습격했다.

다음 달 대한민국 제헌국회를 구성하기 위해 처음으로 국회의원을 뽑는 ‘5·10 선거’를 방해하기 위해 면사무소에 비치된 호적부를 탈취할 목적이었다.

주민 고춘언씨 증언에 따르면 산에서 내려온 무장대가 밤에 습격을 해 호적을 모두 가져가 버렸다고 밝혔다.

면사무소는 불타지 않았지만 이 과정에서 숙직을 하던 직원 정을진, 박근식씨가 목숨을 잃었다. 관내 호적이 사라지면서 법원에 가서 호적을 다시 만들어왔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1951년 모슬포에 육군 제1훈련소가 설치되면서 면사무소는 고등군법회의 건물로 쓰이기도 했다.

건물이 오래되고 낡아 일제시대의 면사무소 건물을 허물고 그 터에 새 청사를 짓게 됐다. 1년 여의 공사 끝에 1955년 8월 5일 새 청사가 완공됐다.

대지 1632㎡(494평)에 연면적 284㎡(86평)의 지상 2층 건물로 신축됐다. 관청 건물로는 크지 않지만 제주석(현무암)을 일정한 규격으로 깎아 쌓으면서 단아한 느낌을 주고 있다.

건물 외형은 세로로 긴 창과 입구 정문의 기둥, 박스형 중앙 출입문(포치) 등 일제 건축양식을 띄고 있다.

1952년 옛 제주도청(현 제주시청)을 모델로 삼아 건축양식을 답습한 것이다. 당시 각 면사무소 건물은 도청의 형태를 본 뜬 축소판이었다.

시공은 도내 건설업체인 신흥토건사가 맡았고, 지역주민들도 공사를 거들었다.

석공이 현무암을 깨면 주민들은 소마차로 실어 날랐다. 석재 운반은 마을마다 하루씩 돌아가며 할당됐다.

도르래로 돌을 옮기면 주민들은 등제 지고 2층으로 실어 날랐다. 공사기간이 농사철과 겹쳐 동원됐던 주민들은 고생이 많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청사 준공식에선 신축을 기념해 기념비 2기가 세워졌다. 하나는 길성운 도지사와 강경옥 서귀포 민의원(현 국회의원), 김선옥 남제주군수 등의 이름을 새겼고, 다른 하나는 강필생 면장 등 당시 대정면사무소 간부 직원들의 이름을 적었다.

준공식 이듬해인 1956년 7월 8일 대정면은 읍으로 승격됐다.

1980년 6월 5일 읍 청사를 상모리에서 하모리 신축 이전하면서 이 건물은 대정보건지소, 서귀포 서부보건소로 사용돼 왔다. 2011년 서부보건소가 새 건물로 이사를 가면서 지금은 빈 건물이 됐다.

당초 기와로 덮여 있던 지붕과 외벽 창호 및 바닥은 개·보수 됐지만 1950년대 신축된 면사무소 가운데 유일한 건축물로 남아 있다.

이 청사는 제주 전통의 현무암을 주재료로 사용했고, 건물 원형이 잘 보전돼 건축기법과 건축 재료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투박하면서도 단정한 모습을 보이며, 제주 관청건물의 초기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옛 대정면사무소’를 2005년 4월 15일 등록문화재 157호로 지정했다.

좌동철 기자 roots@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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