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근대 서양음악의 효시 '길버트음악관'(2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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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버트 소령 음악교육 발전에 기여...오현고 음악관 헌정
6·25전쟁은 많은 상흔을 남겼지만 제주지역의 음악은 한층 더 발전하는 전기를 맞았다.

1952년 유엔민간지원단 제주도 부단장으로 부임한 찰스 길버트 소령이 음악의 불모지였던 제주에 관악의 씨앗을 뿌렸기 때문이다. 그는 오현고등학교 관악대를 창설하는 등 음악교육 발전에 힘썼다.

1950년대 학교 관악대는 제주농업중학교(현 제주고)와 제주초급중학교(현 제주중) 등에 있었다.

이들 관악대는 해방 후 일제가 남기고 간 악기로 교가와 행진곡 등을 연주하는 수준이었다.

정규 편성된 악대가 아니었고, 제대로 된 악보도 없어서 모차르트와 베토벤 등 거장들의 명곡은 접해 볼 기회가 없었다. 악기는 낡다 못해 폐기해야 할 상황이었다.

길버트 소령은 미육군 병참부대로부터 기증 받은 드럼 2점과 나팔 6점을 오현고에 기증하면서 관악대 창설을 주도했다.

그는 미국에 있는 지인을 통해 트롬본과 클라리넷, 호른 등 많은 악기와 악보를 오현고에 지원했고, 도내 6곳의 관악대를 순회 지도했다. 휴가 차 일본에 갈 때는 고장 난 악기를 갖고 가서 수리를 했다.

음악교사들에게는 지휘법을 가르쳤는데 오현고 음악교사였던 고봉식씨(제주도교육감 역임)와 각별한 우정을 맺었다.

또 전쟁 중에 피난을 왔던 이성재 제주중 교사(서울대 교수 역임)와 한국보육원밴드 지휘자인 한경화씨에게 지휘를 가르쳤다.

오현고는 그의 은덕을 기려 1953년 7월 음악관을 신축한 후 ‘길버트음악관’이라 명명해 그에게 헌정했다. 그는 음악관을 지을 때 시멘트 200포를 지원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면서 모슬포 육군훈련소 군악대와 경찰악대가 철수하자 학교 악대도 위축됐다. 하지만 오현고는 길버트 소령이 남긴 유산 덕분에 창단 3개월 만에 전국 규모의 경연대회에 참가했다.

1953년 경남 진주에서 열린 제1회 개천예술제에 참가한 후 내리 16년 동안 우승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1956년 서울대 음대 주최 전국 고교 취주악 경연대회에선 2위에 입상했다.

아울러 미군 정훈장교이자 문관인 길버트 소령의 임무 중 하나는 전쟁 고아로 구성된 ‘한국보육원밴드’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미 공군 군목인 러셀 브레이즈델 대령은 1950년 12월 중공군이 대대적으로 밀려오면서 서울에 있던 고아들을 공군 화물기에 태워 제주도로 피신시켰다. 전쟁터에 남겨진 고아 1059명이 무사히 제주에 도착했다.
제주시 전농로에 ‘한국보육원’이 들어서게 된 계기다. 고아 철수작전은 영화 ‘전송가’로 제작되기도 했다.

길버트 소령은 전쟁 고아 가운데 36명을 선발, 밴드를 결성했다. 선출된 단원에게는 특전으로 쌀 한 사발과 콘플레이크 한 봉지를 나눠줬다.

이 중 5명의 소녀는 지휘봉과 깃발을 돌리며 맨 앞에서 밴드를 리드했다. 소녀들은 미국 재향군인회가 기증한 ‘카우 걸’(Cow girl) 복장을 갖췄다.

1952년 제주를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은 감탄할 정도로 밴드의 실력은 뛰어났다.

제주국제관악제조직위는 이 대통령 부부 앞에서 클라리넷을 불렀던 단발머리 소녀 유인자씨(72·서울)를 2010년 찾아냈다.

유씨의 말에 따르면 한국보육원밴드는 서울·부산 등 전국 공연은 물론 홍콩을 방문하는 해외 연주도 가졌다.

1년 6개월 동안 제주도에 머물며 음악 발전에 기여한 길버트 소령은 1953년 9월 1일 제주를 떠났다.

제주항에서 여객선편으로 떠나기 직전 오현고 관악대는 무사 귀환을 빌며 ‘맨 오브 오하이오’를 작별 곡으로 연주했다.

그의 고향이 미국 오하이오주였기 때문이다. 배에 오른 그는 마지막까지 지휘봉을 들고 선상에서 악대를 지휘했다.

조직위는 전쟁의 상흔 속에서 음악이라는 희망을 선물하고 떠난 길버트 소령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나서고 있다.

그가 재직한 곳으로 알려진 미국 오하이오주립대를 2번이나 방문했으나 연고를 찾을 수 없었다. 또 미국대사관에 공문을 보내 협조를 부탁했지만 행방을 확인하지 못했다.

조직위는 현재 미국 재향군인회를 통해 길버트 소령과 그의 자손을 찾고 있다. 다음 달 8일부터 16일까지 제18회 제주국제관악제가 열린다. 올해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공식 초청 1순위는 ‘길버트 소령’으로 꼽히고 있다.

좌동철 기자 roots@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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