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버트 소령 찾는 것은 제주 관악의 뿌리를 찾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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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철 제주국제관악제조직위 집행위원장 인터뷰
이상철 오현고등학교 음악교사(60)는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제주국제관악제조직위 집행위원장을 맡으면서 길버트 소령이 남기고 간 뜻을 받들고 있다.

이 교사는 “제주 관악의 은인이자 참 스승인 길버트 소령이 떠난 지 60년이나 흘렀다”며 “그를 찾는 게 바로 제주 관악의 뿌리를 찾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에 있는 제자와 지인에게 부탁, 오하이오주립대를 직접 방문했으나 아직도 그의 행방을 모르는데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는 “서울교대 장기범 교수가 길버트 소령을 찾는데 적극 나서고 있다”며 “미8군 사령부와 인연이 있는 장 교수는 미국대사관 부대사를 직접 만난데 이어 최근에는 가장 규모가 큰 3개의 미국 재향군인회 단체를 수소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제주시 이도1동 오현단 경내에 있었던 길버트음악관은 문화재복원사업 일환으로 1970년대 정비를 하면서 철거됐다.

이 교사는 “제주지역 서양음악의 효시이자 상징이던 길버트음악관이 사라졌으나 표지석도 남기지 못해 매우 안타깝다”며 “그의 업적을 재조명하고 후대에 널리 알리기 위해선 현 실정에 맞게 음악관 복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1994년 한국관악협회 제주도지부장을 맡을 당시 일본에서 열린 제8회 아시아·태평양관악제에 제주고교 연합악대가 ‘한국 대표단’으로 출전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대회 출전을 계기로 이듬해인 1995년 제주국제관악제가 태동하는 결실을 맺었다.

이 교사는 길버트 소령이 미국 음악잡지에 기고한 1950년대 원본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소령은 ‘학교음악이 한국의 재건을 돕고 있다’는 주제로 ‘더 스쿨 뮤지션’(1952년 9월호)에 글을 실었다. 또 다른 잡지인 ‘더 바톤(지휘봉)’(1954년 봄호)에는 ‘한국의 제주도-음악의 섬’을 주제로 글을 썼다.

그는 전쟁 당시 제주도가 처한 상황과 학교 음악교육의 현실, 한국보육원밴드의 활동, 미국에서 지원을 해준 사람들의 이름까지 기록했다. 특히 흑백사진은 귀중한 역사적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 잡지에선 고등학교 밴드부 대원들이 농사일을 마친 후에야 연습을 했는데 악기가 모자라 2명의 연주자가 1개의 악기를 가지고 연습했던 상황을 전하고 있다.

소령은 1950년대 초반 천막교실에서 수업을 받는 젊은이들의 상황을 전하는 글로 시작한 후 끝은 이렇게 마무리했다. ‘좋은 음악교육은 전쟁으로 상처를 입은 젊은이들을 어루만져주고 더 나은 미래를 세울 수 있도록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분명히 그러리라고 믿는다.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할 작정이다’

좌동철 기자 roots@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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