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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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득염. 전남대 건축학부 교수
인정하기 싫지만 내가 벌써 환갑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 60갑을 맞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자연의 섭리이지만 자꾸 이를 거부하고 있다. 특히 요즘은 다들 건강하고 오래 사니 환갑이라 하여 어디에다 명함도 못 내놓는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없음은 몸과 마음에서 나타나는 늙어감이다. 어느덧 눈도 침침해지고 다리에 힘도 없고 인지능력도 많이 떨어져 간다. 제자의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자꾸 섭섭함을 느끼는 것이다.

공자님은 ‘논어’에서 나이 예순에 이르자 ‘천지만물의 이치에 통달하고, 듣는 대로 모두 이해할 수 있다’하여 이순(耳順)이라 하였는데 아무리 보통사람이라고 하여도 난 도무지 그렇지 않다. 명색이 교수이고 이제 손자까지 보았는데 오히려 화를 더 자주 내고 잘 토라지고 갈수록 어린 애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생물학적으로 여자에 비하여 남자가 나이 들면 원래 그렇다 한다. 그래서 조금은 위로가 되지만 몸은 쇠잔해 가고 마음은 쫌생이처럼 좁아진다. 특히 적은 일에도 자주 토라지고 서운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살 만큼 살았고 누릴 만큼 누렸으니 이젠 욕심을 버리고 적당한 위치로 물러나 자족하고 은둔하듯 지내야 할 터인데 아직도 꼭 이름 석자를 어딘가에 올리려 하고 가지고 갈 수도 없는 재산을 모으려 한다. 이런 나의 모습이 마치 떨어지려는 밧줄이라도 잡고 바둥거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여 불편하다.

나보다 생일이 빨라 이미 환갑을 지낸 아내는 이미 한바탕 소동을 치렀다.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인인 아들 내외는 일생 아들만을 위하여 평생을 살아온 엄마 환갑엔 전혀 관심도 없었다. 엎드려 절 받는 것처럼 내가 며칠 후면 엄마 환갑이야! 라는 정보를 미리 주어 겨우 몇 푼 용돈을 받아내는 장면을 연출하였다. 어떤 친구는 자식들이 유럽여행을 보내주었다, 누구는 수백만 원짜리 가방을 사주었다, 구구절절 다 섭섭한 얘기만 듣고 슬퍼하는 아내의 입장이 오히려 이해가 되었다. 예전엔 거의 아들과 동지적 입장에서 공감하였던 내가 이젠 아내의 편이 되었다. 아니 더 솔직히 얘기하면 나도 몇 달 후면 환갑이 되어 겪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번에 아들 편이 되지 않고 아내와 동지가 된 것이다. 우리가 어찌 키운 자식인데 말이야! 자식들 다 필요 없어 우리 둘 뿐이야! 응, 알았지?

사실 난 몇 년 전부터 노후준비를 나름대로 하고 있다. 건강관리, 정년 이후 일거리 찾기, 악기연주와 합창단 활동, 환갑 이벤트준비, 아내가 모르는 비자금 모으기 등 비장한 각오로 준비하였다. 물론 계획보다는 반 정도만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 열심히 운동을 하여 아직 정기건강검진에서 지적받는 사항이 거의 없다. 일자리 찾기는 포기하였다. 내가 정년 이후에 돈을 버는 일을 하려 하면 제자들과 부딪치기 때문이다. 제자들의 먹을거리를 스승이 나누어 뺏어 먹는 모습이 좋을리 없다. 색소폰은 몇 달 연습하다 자연스레 그만 두게 되었다. 소리가 너무 커서 연습장소 구하기가 어려웠다. 합창단 활동은 내가 선택한 큰 행복이다. 4부 혼성합창은 화음도 아름답고 남녀가 함께하니 즐겁기도 하다. 댄스를 권하는 사람도 많다. 편견인지 모르지만 그건 좀 그렇다 하여 하지 않았다. 환갑 이벤트로 해외여행을 가려한다. 아내가 가보지 못한 곳을 선택하여 좀 럭셔리하게 해주고 싶다. 그러나 경비가 만만치 않아 자식들의 도움이 필요한데 얘기도 꺼내지 않는다. 아내가 모르는 비자금을 모으다 정말 혼이 났다. 남자만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선배님들의 충언에 몇 년간 모은 돈을 몽땅 털리고 또 배신감에 분해하는 아내에게 부도덕한 사람이 되기도 하였다. 이를 회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나의 환갑 즈음의 푸념은 남들이 보면 염장 지른다고 할 속없는 호사가 아닌가. 아직까지 몸 건강히 잘 지내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남들이 부러워하는 그것도 65세까지 해먹는(?) 직업으로 평생 공부하며 가르치는 행복함이 얼마나 큰가. 나를 평생 웬수라고 부르는 아내가 곁에 있어 더욱 행복하다. 아내가 없는 노후를 상상하면 참으로 우울하다. 얼마 전에 태어난 손자 놈은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다. 어렵게 키운 자식보다 좀 여유가 있는 상황에서 아웅다웅 키울 필요가 없는 손자를 보면 참으로 행복하다. 이제 그동안 잠시 쉬었던 성당에도 다시 나가려 한다. 갈 곳이 없는 탕아가 다시 왔다고 할지 모르지만 하느님이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화를 내고 토라지는 것은 자기 콤플렉스라고 한다. 근자에 나의 못난 마음과 행동은 늙어감을 또 부족함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진정 현명하다면 이만큼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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