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학칼럼]아리랑과 붉은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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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이 단학수련을 하면, 불러야 하는 노래가 있다. 누구든지 세 번만 따라 부르면 부를 수 있는 우리민족의 구전민요, ‘아리랑’이다. 필자는 25년 전 처음 단학을 보급할 때부터 아리랑의 의미를 알려왔다. 그것은 한 맺힌 여인의 처량한 마음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나를 찾아가는 기쁨의 노래’요, ‘깨달음의 노래’다. 그래서 단학인이면 누구나 깨달음의 노래로 아리랑을 부른다. 필자는 아리랑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아리랑은 한자로 ‘我理朗’이다. ‘我’는 ‘참 나’를 의미한다. ‘理’는 이치를 깨닫는다는 뜻이며, ‘朗’은 즐거움을 의미한다. 아리랑은 ‘참 나를 깨닫는 즐거움’이란 뜻이다. 그래서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가서 발병이 난다. ‘나를 버린다는 것’은 ‘참 나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고, ‘십(十)’은 ‘완성’을 의미하므로, ‘십 리를 못 가고 발병이 난다’는 ‘완성을 이루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런 심오한 깨달음의 노래가 우리 민족이 지난 2천 년 간 수많은 외세의 침략 속에서 수난을 겪으면서, 한 맺힌 여인의 노래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민족의 영혼을 사로잡는 영적인 노래인 아리랑은 구미음악가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을 통해 붉은 악마와 만나면서, 민족의 신명을 노래하는 흥겨운 노래로 다시 태어났다. 20년 간 깨달음의 노래로 아리랑을 알려온 필자로서는 남녀노소가 ‘붉은 악마 아리랑’을 부르면서, 함께 춤추며 응원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며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리랑은 이제 붉은 악마의 노래가 되었다. ‘밝고 강하며, 화합하는’ 한민족을 염원하는 붉은 악마의 주제곡이 된 것이다.

붉은 악마는 배달한국 14대 왕인 자오지 한웅(치우천왕이라고도 함)의 상징이다. 자오지 한웅은 중국보다 먼저 선진문물과 철기를 도입하여 나라를 발전시켰고, 광활한 영토를 개척하고 경영했으며, 덕으로 나라를 다스린 왕이었다. ‘붉다’는 우리말에서 ‘밝다’와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어, 치우천왕의 의식이 높음을 의미하고, 악마는 중국인들까지도 두려워하고 숭앙했던 ‘전쟁의 신’으로서의 치우천왕의 ‘강함’을 상징한다. ‘밝은 의식과 강한 힘’ 이것이 붉은 악마를 통해 우리가 갖고자 했던 것이다. 국민들은 붉은 악마를 통해 자기비하와 분열의식을 극복하고, 남녀노소, 계층, 지역을 극복하고, 피부색과 국적까지도 넘어서 하나로 통하는 높은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2002년 월드컵으로 부활한 붉은 악마는 분단 이후 우리 국민의 잠재의식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던 두 가지 콤플렉스를 깼다. 우리 사회의 집단의식 속에 반세기 이상 똬리를 틀고 있던 레드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붉은 색을 이데올로기가 아닌 정열과 희열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악마와 천사라는 대립된 종교적 관념과 내편 아니면 네편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의 고리를 역설과 해학으로 멋지게 끊어냈다.

그리하여 이원론적인 세계관이 인류역사를 지배하기 전에,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라는 삼원론적인 세계관 속에서 조화를 이루었던 옛 선인들의 지혜가 수천 년이 지나서야 다시 되살아나는 듯 했다. 2천 년 전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정신이 다시 부활한 것이다. 다시 아리랑과 붉은 악마의 계절이 왔다. 아리랑과 붉은 악마가 우리 민족에게 던지는 홍익인간의 메시지를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 메시지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한국을 둘러싼 주변 국가들이 축하하는 가운데 통일을 이루어야 하는 우리민족에게 새로운 힘을 줄 것이다. 2006년 6월, 한민족의 새로운 탄생을 창조하는 붉은 악마를 그려본다.

이승헌 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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