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인이 아닌 제주인으로 성공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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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하우스 대표 사르바게 마하르잔
“한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은 제주도죠. 내 고국에서 느낄 수 있었던 청정한 자연과 넉넉한 인심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지난 6월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에 펜션 ‘바그다드하우스’를 오픈한 사르바게 마하르잔씨(42). 그의 고향은 해발 8000m 히말라야의 설산으로 둘러싸인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다.

네팔과 인도를 오가며 보따리상을 하던 그는 1998년 인도에서 열차를 탔다가 옆 자리에 우연히 합석한 배낭 여행객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어느새 정이 들었다.

운명적인 만남은 헤어질 수 없는 인연이 됐다. 이 여행객은 지금의 아내인 서희숙씨(46)로 결혼하기 전 네팔에 있는 그의 집에서 두 달간 머물며 사랑을 키웠다.

7남매 중 막내인 그는 인품이 착하고 공부도 잘했던 가족의 보배였다. 낯선 외국인을 아내로 맞아들이고 한국으로 가겠다는 얘기에 그의 집안에선 결혼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한국의 처갓집에선 “그 많은 외국인 가운데 미국, 일본도 아니고 왜 하필 네팔이냐”며 결혼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양쪽 집안은 이들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받아들였다. 2000년 결혼식을 올린 그는 새로운 삶과 도전을 꿈꾸며 아내의 고향인 애월읍 하귀리에 정착했다.

오래된 집을 단장하고, 마당에 나무를 심고 텃밭을 가꾸는 달콤한 신혼은 얼마 가지 못했다.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아내는 관광가이드로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한국말이 서툴렀고, 비영어권에서 온 그는 한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결국 서울로 상경해 나이트클럽에서 바텐더로 2년 동안 일하며 아내와 생이별을 해야 했다.

대도시에서의 삶은 각박하고 답답했다. 네팔 출신이라며 깔보고 무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결국 사랑하는 아내 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네팔에서 장사를 했던 수완을 발휘해 제주시청 학사로에서 고깃집을 열었으나 신통치 않아 장사를 접었다.

이어 아내의 친구와 동업, 제주에서 처음으로 인도 전문음식점 ‘바그다드 카페’를 개업했다. 고풍스런 인테리어와 맛있다는 평이 더해져 손님들이 북적거렸다.

여행 가이드북인 ‘론니플래닛’ 제주편에는 그의 식당이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소개돼 외국인들의 단골 명소가 됐다.

더 나아가 이슬람율법이 허락한 음식만 먹는 무슬림 관광객을 위해 ‘할랄 푸드’를 제공하면서 다양한 나라에서 온 손님들도 테이블은 꽉 들어찼다.

제주 생활에 안정을 찾으면서 고생만 했던 아내와 어느덧 중학생이 된 아들을 위해 멋진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꽃과 나무를 무척이나 아꼈던 아내는 제주대학교에 편입, 원예학을 전공할 정도로 식물원을 만드는 게 소원이었다.

그동안 아끼고 모은 종자돈으로 숲이 우거진 애월읍 상가리에 있는 1만5000㎡(약 4500평)의 땅을 사들여 예쁜 정원을 만들고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내친 김에 관광객들과 지인들이 편하게 쉬고 갈 수 있는 펜션을 짓기로 결심했다. 하얀색으로 꾸민 2층 펜션은 8개의 객실을 갖췄고, 카페와 바비큐 파티장, 텃밭 등 투숙객들을 위해 세심한 배려를 했다.

현무암으로 만든 옛날 맷돌을 수집한 덕분에 정원에는 멋진 조경석이 설치됐다. 더 나아가 네팔에서 수공예로 만든 거대한 대문 2짝을 화물선 편으로 들여와 설치했다.

펜션 내부는 네팔의 악기, 인도의 코끼리 조각, 파키스탄 양탄자 등 여러 나라의 전통 소품으로 장식했다.

이웃들은 펜션에 놀러 온 뒤 정원과 텃밭에 심으라고 씨앗을 건네고 갔다. 나무와 꽃에 물을 주며 잘 키우는 일은 아내를 위한 중요한 일과가 됐다.

제주에서 ‘소보’라는 애칭을 얻은 그는 유창한 한국어에다 종종 제주 사투리를 구사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낮부터 자정까지는 인도 음식점에서 요리를 만들고, 이른 아침에는 펜션을 챙기는 등 무더위 속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는 “13년 동안 제주에 살면서 목표했던 일을 조금씩 이뤄내고 있다”며 “제주 정착에 성공한 외국인 보다는 가장 성공한 제주사람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좌동철 기자 roots@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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