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닐라 향과 차 따르는 총각의 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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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철 제주대학교 화학과 교수>

 이른 아침에 연구실을 들어서는 순간에 난초 사이에서 꽃 세 송이가 활짝 입을 벌리고 웃고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두 손을 모으고 천천히 난쪽으로 걸어가니 은은하면서 고운 향기가 마음을 적신다. 향기가 연노란 나비가 되어 배회하고 있다. 두 송이는 수줍은 새색시처럼 입을 오므리고 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저렇게 울었나 보다’라고 읊은 한 시인의 심해 속 마음이 난꽃 향기와 악수를 한다. 저렇게 고운 자태와 아름다운 향기를 뽐내려고 난은 서늘한 바람을 음미하고, 바람이 품고 있는 수분을 섭취하면서 묵언정진했을 것이다.

 

필자는 아직 꽃의 언어인 향기의 내면세계를 잘 모른다. 난꽃은 화려함보다 소박함, 강력함보다 유연함, 특이함보다 평범함, 조잡함보다 섬세함, 일회성보다 지속성이 더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난향(蘭香)은 은은한 향기 속에 매혹적인 향기, 자몽과 딸기 같은 과일 향 속에 달콤한 바닐라 향, 제비꽃의 싱그러운 녹색 향 속에 재스민 향기가 잉태되어 있음을 은연 중에 표현하는 것 같다.

 

늦은 오후 시간에 실험실을 벗어나 ‘양촌리마을’이라는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식당 가족의 일원인 한 총각이 20여 개의 용기에 차를 따르는 정갈한 모습이 지극정성이었다. 그 총각의 얼굴 모습이 포근하고 너무 맑았다. 연구실의 난꽃 향기와 총각의 밝고 여유로운 자태에서 번져나오는 향(心香;심향)이 주위 환경을 수놓는 것 같았다.

 

연구실의 한 송이 꽃이 향기로 자신이 하고 싶은 사연을 전달하듯이 평범함 속에 성실히 생활하면서 매사에 밝은 모습으로 임할 때 발하는 은은한 심향은 올 여름처럼 혹독한 불볕 더위에도 한 줄기 소나기처럼 주위 환경을 쾌청하게 할 것이다. 청결과 친절의 바탕 위에 장인정신이 투철한 식당 문화는 제주도 관광 발전의 첫걸음이며 초석이 될 것이다.

 

난향과 심향에 취해 향신료로 바닐라(vanilla)가 첨가된 초콜릿이 그립다. 체온처럼 온기가 느껴지는 바닐라와 따뜻함이 스며들어 있는 캐러멜 향 등을 동반자로 한 향수, 소니아 리키엘(Sonia Rykiel) 향수가 뇌리를 스쳐간다. 이 향은 울로 만든 스웨터처럼 포근한 느낌을 선사할 것이다.

 

니트웨어 디자인의 대가인 소니아 리키엘은 “내가 니트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것이 마치 마법과 같은 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 한 올을 가지고도 너무나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갈파한다.

 

독특한 일상복 디자인의 선구자답게 그녀는 매사가 실 한 올, 한 걸음, 한 단어에서 시작됨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그녀의 이런 온화한 생각이 향수에 녹아 있어 매력이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에서 소박함과 겸손함은 여유로움의 디딤돌이다.

 

바닐라 향은 다양한 향을 받아들이는 향신료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어떤 향신료 또는 요리에도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이에 곁들여지는 향신료 종류에 따라 특이하면서 고운 맛을 창출한다.

 

이의 성숙한 열매를 따서 발효시키면 바닐린(vanillin)이라는 독특한 향기를 발하는 무색 결정체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은 초콜릿·아이스크림·캔디·푸딩·케이크, 그리고 음료 및 술의 향미로 가치가 있다. 대부분의 상업용 음식은 더 싼 대용물로 사용하기 때문에 조잡한 맛과 불쾌한 뒷맛을 남긴다.

 

한 송이의 난꽃, 내면세계의 거울인 깨끗한 얼굴을 가진 총각, 소니아 리키엘 향수, 향신료의 어머니인 바닐라 등은 이 찜통 무더위를 몰아내는 신선한 산소기체와 향기를 품은 부채이며 선풍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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