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유산과 인문학을 통한 도시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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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득염. 전남대 건축학부 교수
인간이 집짓기를 시작한 이래로 그들의 희망은 안전하고 편리하며 아름다운 집짓기를 원했을 것이다. 동물이나 곤충까지도 건축적 본능이 있는데 인간은 건축과 도시를 건설함으로서 신에 도전이라도 하듯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려는 열망을 끊임없이 드러내곤 했다. 종교건축은 한없이 웅장하고 높아지려고 하였고, 군주들은 사후(死後)공간을 구축함에 있어서 수십만 명이 동원되는 장대한 묘제건축을 건립하였다. 시간이 흘러 산업화가 진행되자 도시공간이 집적화되고 확장되면서 교통, 주거, 환경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나타나게 되었지만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도시화 추세는 50%에 이르고 장차 20년 후가 되면 약 75%에 이를 것이라 한다.

토마스 무어가 유토피아라는 단어를 만들어내기 이전에도 인류는 현실세계의 한계를 뛰어넘는 신세계를 원하였다. 이런 인류의 열망은 어려움으로 가득한 현대사회에서 이상향으로 나타나며, 해결 방안으로 도시구조에 대한 얘기도 거론되고 있다. 무어는 이상도시왕국 건설을 통해 당시 영국의 사회경제적 병폐와 종교적 자유 및 개방화 되어가는 유럽 경제체제에 대한 경제적, 공유사회적 유토피아를 제시하려고 하였다. 그의 유토피아적 도시구조와 운영원리는 자족성, 도농통합, 인구통제, 건물 내부에서의 공동체 생활, 토지이용 분리 등이며 이러한 상당수 논지는 근대 도시계획으로 계승되었다.

그렇다면 온갖 열망으로 가득한 지구상에서 공동생산, 공동분배에 6시간 노동하고 8시간 잠자고 나머지는 오락이나 취미생활을 하며, 경직된 관료주의가 아닌 민주주의와 민중중심의 사회주의가 정립되는 나라가 있을까. 또한 도시공간이 유토피아처럼 구현될 수 있을까? 19세기말 영국인 하워드는 대도시와 지리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지역에 전원과 도시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는 자족적인 도시건설이 황폐화된 도시를 개선하는 유일한 대안이라 하였다. 20세기에 들어서서 건축가 라이트는 브로드에이커 시티라는 이상도시안을 내놓았다. 이 안은 극단적인 저밀도도시로 특징적인 것은 교통체계다. 거주자 모두가 자동차를 소유하고 헬기형태의 교통수단을 이용한다. 입체화된 여러 층의 도로로 구성되어 철도, 화물수송차. 고속교통수단인 모노레일 등이 층별로 이용된다. 당시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혁신적인 제안이다. 중심지가 없는 도시에서 학교와 그 주변은 공동체센터가 된다. 주변에는 화랑, 공연장, 강연장, 작은 공원이 마련되어 있다. 에너지는 전기, 석유, 가스인데 공동구에 의해 공급받는다. 주민과 가까운 작은 정부, 개발을 제한하는 그린벨트기능의 수목 띠도 있다. 이 모든 물리적인 계획은 지방분권적 행정조직 내에서 건축가가 계획하고 관장한다.

이처럼 혁신적인 사상가와 건축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도시공간을 통해 유토피아를 실현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르네상스 이래로 수백년간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열망과 도시성장이 같기 때문이다. 즉 산업화를 거치면서 빠른 속도로 성장한 현대도시들은 일정한 공간 안에 사람과 건물을 비롯한 엄청난 재화를 탐욕적으로 몰아넣었다. 결국 도시는 도시외곽부로 확장되었고 기존의 전통적 도시환경은 공동화되고 변모되어 정체성을 잃고 말았다. 도시는 장구한 세월 동안 건물과 길, 식생과 사람들이 어우러져 생성되고 변해가는 공간이다. 도시의 품격은 사람과 공간, 전통과 일상문화가 어울려 생성된 것이다. 더욱이 장소와 역사에 대한 애정과 인식이 이어져갈 때 도시는 기품을 더해가는 것이다.

지난 4월 국교부는 앞으로의 도시개발은 신도시, 혁신도시 등 역대 정부에서 펼쳤던 새로운 단지조성 정책을 지양하고 기존도시를 활성화하겠다는 정책을 내놓았다. 의미 있는 정책으로 여겨진다. 그간 지방도시의 성장구조를 보면 인구는 한정되어 있는데 도시는 공간적으로 확장되어 당연히 인프라가 좋은 신도시 쪽으로 인구가 집중되기 마련이다. 상대적으로 구도심의 공동화를 초래했고 이로 인해 도시의 불균형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지난 시대의 역사유적을 활용한 구도심의 활성화는 이미 세계적으로 실효성이 입증된 사례가 많다. 즉 전통공간을 문화적으로 재생시켜 주변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근대건축이나 유적도 그 몫을 크게 하고 있다. 인천과 군산, 목포 등은 일제강점기의 항구시설을 이용하고 있으며, 대전의 경우도 철도청 옛 관사를 활용한 구도심 활성화가 진행중이다. 통영의 동피랑은 벽화로 명소가 되었다. 붉은벽돌조 근대건축이외에도 소금창고와 골목길, 교도소 등 경향각지에 그뿐이랴. 한편 유럽은 지금 문화예술로 도시를 재생중에 있다. 철도역사를 재생시킨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이나 발전소를 문화공간으로 바꾼 영국의 테이트모던미술관을 언급하는 것은 이젠 벌써 한물간 얘기이다.

근자의 화두는 인문학이다. 인문학으로 현실의 도시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 인문학에 노크하고 도움을 청할 필요가 있다. 공간의 이용주체인 사람들이 공간에 대한 가치를 고민하고 판단하게 하는 생각의 틀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인문학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된다. 광주의 푸른길을 살리자는 공동체에서는 폐기차 안에서 인문학강의를 듣고 있다. 몇마디 강의로 어찌 인문학을 이해하리요 만은 인간을 배제시킨 건축과 도시공간에서 인간중심으로 함의와 접점을 끌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도시의 생성원리에 대한 고민 없이 일방적으로 조성되어온 도시의 양적성장에 대한 반성과 정체성 모색이 결국 인문학에서 찾아야 할 해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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