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앞두고 온 섬이 벌초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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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유별난 별초 문화 이야기
요즘 중산간지역 들녘에는 벌초객들로 넘쳐나고 있다. 제주의 벌초 문화는 도민뿐만 아니라 일본에 간 출향인까지 방문할 정도로 유별나다.

이 시기에는 “벌초 했수과(했습니까)”라는 인사가 안부로 통할 정도다.

음력 8월 초하루(9월 5일)를 전후로 섬 전체가 벌초 행렬로 이어진다. 대개 초하루 이전에 끝내기 때문에 이번 주말과 휴일은 ‘벌초의 날’이다.

제주에서는 벌초를 ‘소분’(掃墳)이라고도 부른다. 벌초는 크게 두 차례로 나눠 진행된다.

먼저 제사를 모시는 가까운 조상의 묘소에 벌초를 한다. 이를 ‘가지 벌초’라고 한다.

또 8촌 형제들까지 모여 증조와 고조부 등 4대조 묘까지 깨끗하게 손질하는 ‘모듬 벌초’가 있다.

제주 속담에 ‘식께(제사) 안 한 것은 남이 몰라도 벌초 안 한 것은 남이 안다’는 말처럼 벌초를 매우 중요시 한다.

객지에 나간 사람들이 명절과 제사에는 못 오더라도 벌초는 참가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과거 제주에서 외아들을 육지로 잘 보내지 않으려는 것도 벌초 때문이다. 벌초하지 못하고 방치한 묘를 ‘골총’이라고 하는데 이는 그 자손의 몰락을 의미한다.

추석 때까지 벌초를 안 한 묘소가 있으면 불효의 자손을 두었거나 조상의 대가 끊겼다고 해서 손가락질을 받는다. 이처럼 제주에선 벌초를 안 하는 것을 불효 중의 불효로 친다.

묘지들은 대부분 중산간에 있다. 깊은 덤불을 헤쳐 나가거나 오름 비탈을 올라야 한다.

벌에 쏘이고 뱀에 물리고 예초기 날에 부상을 당하면서도 해마다 산소로 향하는 행렬은 멈추지 않는다. 이유는 하나 오로지 조상묘의 벌초를 위해서다.

그래서 제주에만 있는 방학이 ‘벌초 방학’이다.

2003년까지 각급 학교마다 100% 벌초 방학을 했다. 그러나 점차 줄면서 2007년에는 178개 학교 가운데 60%인 106개 학교만 임시 벌초 방학을 했다.

최근에는 더욱 줄면서 벌초 방학은 ‘그리운 방학’으로 남게 됐다.

벌초를 매우 중시하다보니 관련 사업도 생겨났다. 이른바 ‘벌초 대행 서비스’. 농협제주지역본부(본부장 강석률)가 2008년 지역농협을 중심으로 9개 농협에서 시작한 것이 재일교포들도 의뢰할 정도로 호응이 높다.

올해는 14개 지역농협이 사업에 참여해 확산일로에 있다. 농협제주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농협 산소관리서비스사업으로 총 1000여 건의 벌초를 대행했다. 한 기당 4만~10만원 정도의 비용을 받는다.

신청은 산소가 위치한 지역농협을 확인한 후 해당농협으로 전화하거나 농협제주본부(720-1224)로 문의해도 가능하다.

벌초와 관련한 에피소드도 있다. 2006년 조상묘 벌초를 조건으로 큰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줬다가 이를 게을리 한다며 재산을 되돌려 달라고 어머니가 소송을 냈다.

제주지법 재판부는 “묘소 벌초와 제사 봉행 등을 하지 않은 아들은 물려받은 재산을 다시 어머니에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그런데 최근 봉분을 조성하는 산소대신 납골당과 자연장을 권장하면서 벌초 문화가 점차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우리 세대가 지나고 다음이나 다다음 세대에서도 아름다운 미풍양속인 벌초 문화를 계속 볼 수 있을까?

좌동철 기자 roots@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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