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부탁이어서 하는 컴퓨터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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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혜 부모교육 강사>

“아들! 엄마가 부탁이 있는데 들어줄래?” 외출 준비를 하다가 갑작스럽게 아들을 불러 하는 말이다.

“뭔데요? 들어보고요.”

 

“엄마가 부탁하는 건데 들어보고는 좀 너무하다. 그냥 무조건 들어주면 안 돼?”

 

망설이던 아들이 조금 미안한 듯 “네, 그럼 말씀하세요” 하며, 나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조금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엄마가 없는 세 시간 동안 컴퓨터게임 실컷 해줄래?”

 

“뭐예요? 그게 무슨….”

 

어정쩡한 표정으로 대답하던 아들의 얼굴이 갑자기 화창해진다. 이 순간 나는 엄마의 부탁이라면 조건 붙이지 않고 들어주려하던 아들의 깊은 마음에 행복하고 내가 이런 아들의 엄마인 것이 뿌듯했다. 거기다 우리 모자를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이런 기지가 내 머리에 떠올라준 것에 참으로 흡족했다. 저녁 약속 장소로 걸어가는 동안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다.

 

중2 아들이 기말고사가 끝난 금요일 저녁이었다. 남편은 아침에 미리 늦게 들어올 거라고 했고, 엄마인 나 또한 친구들과 저녁 약속이 있어 나가야 한다. 그러면 집에는 아들만 있어야 했다. 그런데 아들은 시험이 끝났다고 아까부터 어정거리며 집안을 왔다 갔다 한다.

 

우리 집에서는 TV나 컴퓨터를 주말에만 하기로 되어있다. 그런데 오늘은 금요일이기 때문에 결코 TV를 켜서도 안 되지만 컴퓨터를 해서도 안 된다. 나갈 채비를 하며 가만히 지켜보았더니 아들은 내가 나가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 녀석, 내가 나가고 나면 컴퓨터게임을 실컷 하겠지? 그럼 내가 나가지 말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친구들 모임에 나가지 않아야 할 이유가 단지 아들을 감시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을 하니 아직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의심받는 내 아들이 불쌍했다. 아들을 의심해야하는 엄마인 내가 더 초라해보였다.

 

그래서 내가 없을 때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면서 컴퓨터게임을 하느니 차라리 마음이라도 편안하게 해주고 싶었다. 주중에는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인데 엄마 부탁이니까 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지만 썩 괜찮은 유쾌함이 감돌았다.

 

아들이 컴퓨터게임 세 시간 동안 하는 동안 물론 잃는 것도 많을 것이다. 그 시간이면 책 한 권을 읽을 수 있고, 영어 단어는 몇 백개 외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간 말고도 다 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런 일을 강요했다면 그 순간 내 아들이 느꼈을 짜릿한 감동, 무한한 자유, 그리고 부모에 대한 깊은 믿음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나는 아들의 참마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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