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선진현장을 가다 - (2)호주(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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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 주 법.의회.경찰.교육 독자성 보장

지난해 12월 중순 호주 시드니에 도착했을 때 호주는 6개월 가까이 사상 최악의 가뭄에 시달리고 있었다. 녹색 대평원은 겨울이 온 듯 온통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마침 가뭄피해 보상비 문제가 현안이 돼 있었다. 보상비 지원주체 문제를 놓고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연방정부는 ‘각종 농축산물의 유통과 수출로 수입을 올리는 주정부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주정부는 ‘국가적 재해는 연방정부 재원에서 나와야 한다’고 맞섰다. 이 힘겨루기는 며칠 동안의 공방과 정치적 협상 끝에 결국 연방정부가 재원 부담을 떠안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호주 연방수도특별구(ACT)의 마크 퀴아코우스키 국무조정실장은 “연방정부와 주정부 간, 주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크고 작은 다툼은 항상 있다”며 “정해진 법칙은 없고 각자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그때마다 치열한 논쟁과 여론의 추이에 따라 방향이 결정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방정부의 각료들과 6개 주 및 2개 특별구의 수상들은 1년에 2번 회의(Council of Australia Government)를 개최, 정책과 입장을 조율한다. 시급한 현안이 발생했을 때도 회의는 소집된다. 호주 전체에서 700여 개에 달하는 지방정부의 연합체도 주정부 혹은 연방정부를 상대로 자신들의 요구조건을 내세우고 총리 및 각료들을 불러 회의를 개최할 수 있다. 한국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 속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 호주에서는 최근 들어 연방정부의 힘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가뭄피해 보상비 부담을 연방정부가 떠안은 것도 한 사례로 거론된다. 한국적 관점에서는 ‘중앙집권화가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주정부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호주의 지방자치 역사와 배경은 한국과는 판이하다.

호주는 1800년대 초.중반 6개의 독립된 영국 식민지로 출발했다. 각각 독자적인 통치 아래서 상호간 심한 경쟁을 벌이는 6개의 ‘국가’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1800년대 후반 프랑스, 독일 등 다른 유럽국가들의 위협에 공동대응하기 위해 연방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견해가 나타났다. 결국 각 주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1901년 호주 연방이 탄생했다.

호주의 정치체계는 연방→주→지방정부 등 3단계로 구성돼 있지만 각 주의 독립성이 철저히 보장된다. 주마다 독자적인 법과 의회, 경찰 및 교육제도를 두고 있다. 학제의 경우 뉴사우스웨일즈주는 초등학교 6년, 고등학교 6년이지만 퀸스랜드주는 초등학교 7년, 고등학교 5년으로 돼 있고, 입시제도도 주마다 다르다. 열차 궤도도 주마다 차이가 나 불편을 겪다 30여 년 전에야 통일을 시켰을 정도로 주의 독립성이 강하다.

뉴사우스웨일즈(NSW)대학의 사회과학학부 마이클 존슨 교수는 “호주는 영국 연방의 하나로서 영국에 대한 향수가 강하지만 정치체계는 런던에 모든 힘이 몰려 있는 영국의 중앙집권체제를 추종하지 않고 미국이나 독일식의 연방체계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한편 지방정부는 주정부의 법적 테두리 안에서 주민생활과 밀접한 업무를 맡아서 수행한다. 주정부의 힘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지방정부가 주정부의 정책을 무조건 따르지는 않는다. 뉴사우스웨일즈주의 지방정부연합 데이비즈 홀 사무총장은 “주정부가 3년 전 시드니의 인구분산을 위해 부도심 개발정책을 내놓았지만 일부 지방정부는 이를 거부해 심각한 마찰을 빚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지방자치에 대한 관념의 틀이 강하게 뿌리 박혀 있는 것이다.

주정부와 지방정부의 힘은 재정자립에서 나온다. 각각 충분한 세원이 확보돼 있는 가운데 가장 큰 세원인 소득세를 연방정부가 거두지만 상당부분 합리적인 기준과 원칙에 의해 각 주와 지방정부로 배분되기 때문에 재정적 독립이 가능하다고 한다.

호주국립대(ANU) 정치학과 그웬 그레이 교수는 “지방자치제도는 각 나라의 역사와 사정에 따라 다르지만 국민편의와 합리성을 고려해 어떤 제도가 나은지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하는 자세는 동일하게 필요하다”면서 “호주의 3단계 정치체계도 이상적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중앙정부가 정치, 외교, 국방 등 상위개념을 전담하고 나머지 국민들의 실생활과 관련된 권한과 책임은 지방정부로 넘기는 2단계 체계가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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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6사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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