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근대 건축물들...당국 안일한 대응 문제
사라져가는 근대 건축물들...당국 안일한 대응 문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제주대 용담캠퍼스 옛 보관, 옛 제주시청사 허물어
   
(사진=옛 제주대 본관) 우리나라 건축사에 한 획을 그은 김중업 선생이 1964년 설계한 제주대학교 용담캠퍼스 옛 본관. 자서전 작품집 표지에 실린 이 건물은 3년 동안 보존과 철거에 대한 지루한 논쟁을 벌이다 붕괴가 더욱 가속화 됐고, 당국의 근시안적인 태도와 보수비 미확보 등으로 1995년 철거됐다.
서양건축 1세대 유학파이자 한국의 건축 명장으로 꼽히는 고(故) 김중업 건축가(1922~1988).

그는 근대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코르뷔지에로부터 지도를 받은 한국인 최초의 제자로 많은 걸작을 남겼다.

문종철 제주대학교 학장과 친분이 있었던 그는 1964년 제주대 용담캠퍼스 옛 본관을 설계했다. 하지만 예산 부족으로 착공한지 6년 뒤인 1970년에야 완공됐다.

연건평 1900㎡, 4층 건물로 옛 본관 건립은 제주대가 국립대학으로 승격된 첫 해에 이뤄진 중요한 사업이었다.

우주선과 같은 외형에 미래도시를 연상케 하는 건축물로 조개껍질을 펼쳐 놓은 듯한 현관과 경사로의 기하학적인 곡선은 바다가 가지는 생명력과 제주도의 역동적 이미지와 부합돼 현대 건축사의 한 획을 긋는 작품으로 평가 받았다.

그의 자서전인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의 표지 앞뒤로 주한프랑스대사관과 제주대 옛 본관의 사진을 게재하면서 그의 혼과 열정이 담긴 대표작임을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바다모래가 사용되고 내부 공간의 잦은 변경으로 1985년에 이어 1992년 누수현상이 발생했고, 붕괴 위험이 제기됐다.

옛 본관을 둘러싸고 철거와 보존 의견이 논의돼 당시 한국 건축계의 중요한 이슈가 됐고, 최초로 근대 건축물에 대한 보존운동이 전개되기도 했다.

1994년 대한건축학회의 안전진단 결과, 보수·보강이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고, 대학 측 역시 보수비용과 건물 활용에 난색을 보이면서 1995년 결국 건물이 철거됐다.

일방적인 철거에 대해 많은 건축가들은 제주대 발전사의 중요한 의미를 지닌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사진에서만 볼 수 있게 됐다며 한탄을 했다.

제주대 김태일 건축학부 교수는 “옛 본관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원형을 보존하지도 못한 채 시간만 허비하다가 철거에 이르렀다”며 “예술성과 상징성, 역사적 가치를 넘어서 한국 건축사에 영원히 남을 건축작품이 새로운 생명을 얻지 못하고 사라졌다”며 깊은 아쉬움을 내비쳤다.

아울러 제주의 근·현대사의 상징이자 대표적인 공공건축물인 옛 제주시청사가 지난해 말 당국의 안일한 대응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주시 삼도2동 관덕정 옆에 자리 잡았던 옛 제주시청사는 제주읍이 제주시로 승격된지 4년 후인 1959년 10월 2549㎡ 부지에 연면적 1707㎡ 규모의 2층 건물로 지어졌다.

이 건물은 해방이후 우리나라 근대 건축가(박진후)가 설계한 제주지역 최초의 건물이자 도내에서 처음으로 시멘트벽돌을 사용했다.

제주시청사가 1980년 3월 옛 제주도청사로 사용했던 지금의 자리로 옮겨지기까지 21년 동안 시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해 왔다.

특히 조선시대 제주의 중심이던 제주목관아를 끼고 있고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제주역사의 중심공간이자 도시발전사를 엿볼 수 있는 중요성과 상징성을 지녔지만 청사가 이전되면서 민간에 매각됐다.

건축학계에선 옛 제주시청사에 대한 보전·활용방안을 주문했지만 2005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제주시청사와는 달리 사유지라는 이유로 방치되다가 지난해 철거에 이르면서 역사의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좌동철 기자 roots@jejunews.com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