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 잡혀간 조선 국왕의 투구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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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문. 스님.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한마디로 좀 놀랐다. 2013년 10월 1일 설레는 마음으로 도쿄 국립박물관 동양관 전시실을 들어섰을 때, 그토록 바라보고 싶었던 조선 국왕이 착용한 ‘대원수 투구’가 전시돼 있었다. 조명을 받아 빛나는 황금 용문양과 백옥 장식을 넘어서 거기에는 분명 무언가가 뿜어져 나왔다. 투구를 직접 보기 직전까지 이것이 조선왕실에서 대대로 고종까지 전래된 ‘조선 대원수 투구’임을 어떻게 알 수 있냐고, 약간의 비아냥거림을 섞어서 질문하던 기자들조차 더 이상의 의심을 접었다. 투구에 서린 장엄한 아우라는 군신(軍神)의 수호가 함께 하는 제왕의 투구임을 분명히 느끼게 했다. 국내에는 한 점도 존재하지 않았던 완벽한 형태의 투구를 결국 찾아냈구나! 바로 이 투구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기에는 무려 3년의 노력이 필요했다. 돌이켜 보면 기적과 같은 사실의 연속이었다.

2010년 10월 '조선왕실의궤 반환절차'의 마무리 작업을 위해 도쿄에 갔을때, 문화재 환수운동의 협력관계에 있는도쿄 고려박물관 이사 이소령 선생님에게서 뜻밖의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일제시대 도굴왕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직접 유물의 출처를 기록한 ‘오구라 컬렉션 목록’이란 책을 구했다고 했다. 이소령 선생님이 보여주신 책을 펴자마자 나는 도쿄국립박물관 소장의 용봉문 투구에 대한 출처부터 확인해 보았다. 오구라는 이 투구가 ‘조선왕실의 전래품’이라고 기재해 놓고 있었다. 그때까지 막연한 추정만 있었던 ‘제왕의 투구’가 문서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이 기록은 오구라 컬렉션의 반환 근거까지 제시해 주고 있었다.

조선왕실의 소유품이라면 개개인의 매매로 유통될 수 없는 물건이었다. 게다가 1910년 국권을 빼앗긴 뒤에도 ‘궁내부장관’이란 부서가 조선 왕실의 유물과 재산을 관리했으므로, 허가 없이 왕실의 물건이 민간이나 해외로 유출되는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였다. 하물며 '임금의 투구'와 같이 상징성 큰 물건이 매매되어 일본으로 넘어갔다는 것은 도굴 혹은 절도가 아니면 불가능한 행위였을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오구라 컬렉션에 대한 문제제기를 위해 ‘조선 대원수 투구’를 전면에 내세우기로 하고 이 투구의 특별열람과 공개를 신청해 왔다. 그리고 여기에 더 큰 명분을 갖기 위해 일본 시민단체들과 연대하는 한편 고종의 후손인 황사손 이원씨를 찾아가 함께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해 왔다. 그런데 뭔가 중간에서 일이 틀어져 버렸다. 일본 시민단체, 국회의원 그리고 문화재제자리찾기 등과 함께 협력하면서 도쿄 국립박물관에게 특별열람 허용과 오구라컬렉션의 문제를 제기해 오던 황사손 이원씨가 입장을 바꿔 버렸다. 황사손은 이원씨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지난 수년간 노력해 왔던 사람들과 협의 없이 2013년 2월래 일본에 가서 비밀리에 단독으로 ‘특별열람’을 했다고 했다. 그분이 왜 그랬는지 정확한 이유는 나도 알지 못한다. 혹시 내가 뭔가 그분에게 큰 실수를 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닐까 하는 자책감에 곰곰이 반성해 봐도 그럴 일은 전혀 없었던 듯하다. 게다가 그 후 이원씨는 “황실의 후손이 직접 문화재 환수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것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우선 후손된 도리를 다하기 위해 열람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단독 신청했다”는 말씀이었다. 황사손 이원씨가 단독열람 이후 소극적 자세로 전환하고,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측도 민족문화재 환수란 주제로 이 운동을 전개할 의향은 없는 듯했다.

2013년 2월 중순 어쩔 수 없이 나는 일본 사람 8명과 동시에 도쿄국립박물관에 열람신청서를 접수하고, 더 이상 공개를 거부한다면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최후로 통첩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도쿄 국립박물관으로부터 뜻밖의 낭보를 전달받았다. 2013년 10월 1일부터 12월 23일까지 한시적으로 ‘조선 대원수 투구’를 공개하겠다는 통보였다. 드디어 조선 최고 군 통수권자인 ‘대원수 투구’를 직접 보게 되겠구나! 나는 어린아이처럼 몇 달간 마음이 설레어 하루하루를 손꼽아 기다리며 도쿄로 향했다.

대원수 투구를 본 뒤 일종의 놀라움과 분노는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가시지 않는다. 일본에 잡혀간 조선군 최고 통수권자의 투구를 어떻게 탈출시켜야 하는가! 끝도 없는 고민을 놓고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다. 도쿄에서 조선 국왕을 만난 분노는 아무래도 가시지 않고, 무심히 방관하는 우리 정부에 대한 원망이 피어오른다. 무턱대고 나는 도쿄 국립박물관에 아래와 같은 짧은 편지를 보냈다. 마음이 아프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 것일까 !

“일본 국민의 양심에 묻습니다. 나는 왜 일본에 있는 것입니까? 나는 한때나마 조선의 국왕이었습니다.”-조선 대원수 투구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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