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개성을 꽃피우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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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걸. 시조시인/한국시조시인협회장
팔공산 부근의 후배 시인 댁에서 야생화를 구경하고 온 적이 있다. 칠월말의 정원은 스산한 느낌이었다. 담장을 수놓고 있는 능소화 외엔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상사화나 도라지꽃, 산나리꽃을 몇 송이 보았을 뿐 만개한 무더기꽃은 볼 수가 없었다. 화원의 주인은 40여년 야생화를 가꿔온 고수답게 야단스런 수사로 우리를 피곤하게 하지 않았다. 모든 꽃은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것, 화원은 넓이의 한계가 있어 필요한 것을 그 꽃의 특성에 맞게 심고 그 특성에 맞게 관리한다는 것, 재배할 자신이 없는 꽃을 아무 곳에서나 구해 와서 심어놓고 죽이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잔잔하게 설명했다. 들꿩나무는 물을 많이 요구하고 산수국은 수정이 되고나면 돌아앉고 능소화는 독성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 식물들은 저마다 다른 특성이 있다. 양지를 좋아하는 꽃이 있고 음지에서도 잘 피는 꽃이 있다. 계절 따라 피는 시기도 색깔도 모양도 다른 것이 꽃이다.

돌아올 때 내 등 뒤에 흘리던 말이 지금도 여운으로 남아 있다. 옛날에는 분에 담아 키워서 가끔 선물로 드렸지만 지금은 줄 수도 없고 주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었다. 왜 주고 싶지 않다고 했을까? 우선 자기만큼 꽃을 사랑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런 사람에게 자기가 애지중지 키운 꽃의 미래를 맡기고 싶지 않아서 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화원은 철저한 계획 하에 짜여 진 것이어서 어느 꽃 하나도 빠져나가면 전체의 조화가 깨어져 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가꾸어온 많은 꽃들은 그 꽃 각각의 특성으로 그 화원의 아름다움에 공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얘기는 너무도 당연하고 평범한 것이어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자꾸 되새겨 진다. 가령 우리 한국시단에 시인이 너무 많다고 하는 이가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많아서 좋을 수가 있다. 다만 그 많은 시인들이 존재해야할 이유를 증명할 만한 개성적인 작품을 쓰고 있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이 경우는 화가에게도 음악가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해야 할 기준이다. 대가들의 흉내를 내는데 평생을 보내고 있는 사람, 아예 시인이나 화가나, 음악가라고 하기엔 부끄러울 만큼 못 미치는 재능을 지닌 사람들은 자기만의 향기를 지닌 작품을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 자명한 이치를 다시 되뇌며 곰곰이 주위를 살펴보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건 개성의 발화를 오히려 방해하는 일들이 대세처럼 우리 주위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교육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대학의 특성화란 대학의 개성 확보를 위한 몸부림이다. 잘 되고 있는가? 70년대까지만 해도 각 지역마다 제법 수준 높은 대학들이 있었다. 지금은 서울에 있는 대학이 ‘서울대학’이라는 세인들의 인식을 잘못 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부동의 명문대가 우수학생을 독점해 왔지만, 내실 면에서 그다지 발전한 것 같지 않다는 견해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까? 취직 안 되는 학과들이 퇴출되고 있다. 철학과, 독문과, 불문과에서 드디어 국문과까지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좋건 싫건 여러 사정을 살펴서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까지 안정을 찾기 어렵다. 로스쿨, 의학대학원의 출현은 그 영향력이 가히 태풍급이다. 바람직한가? 이런 세태에서 열심히 한 길로만 가면 된다고 충고한들 묵묵히 자신의 길로 갈 수 있을까?

최근에는 지자체별 문화행사도 그렇다. 강진의 청자축제, 서귀포 야해 페스티벌, 진주 유등축제, 밀양 연극제, 경포 여름바다 예술제, 대관령 국제음악제, 광주 비엔날레, 전주 소리문화축제 등 지역의 여건과 자생적 노력으로 성공한 문화행사가 많다. 이런 행사를 벤치마킹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다른 분야의 행사를 해야 한다. 부산 국제영화제와 제천 국제음악영화제 개최 등은 그런 노력의 결과로 보인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며 산다. 그 다양한 가치야말로 인생의 풍요로움과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게 하는 원천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서열화를 부추긴다. 획일화를 부추긴다. 그림을 좋아하고 잘 그리는 학생에게도 성적이 우수하면 법대를 가게하고, 물리학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학생에게도 의대지망을 강요한다. 결국은 권력을 쥐고 돈을 버는 학과를 학생에게 강요하여 스스로 가고 싶은 길을 막는다. 도시 문화행사에도 내실 있는 행사, 개성을 살릴 수 있는 행사보다 그럴듯하게 보이는 행사, 인기 있는 분야의 행사를 선호하게 된다. 여기에서 획일화의 무서운 부작용을 발견하게 된다. 스스로의 미래를 꿈꾸며 설계할 학생의 모습이 희미해지고 다양한 개성으로 풍요로워질 도시문화가 멀어진다.

문득 야생화를 그 특성에 따라 심고 가꾸던 팔공산 그 화원의 주인이 더 크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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