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서 금메달 목에 걸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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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10볼 금메달리스트 하민욱 선수
   
지난달 25일 인천에서 열린 전국체전 마지막 날. 당구 남자 일반부 포켓10볼 결승전은 피 말리는 승부가 펼쳐졌다.

하민욱 선수(제주도당구연맹·32)가 함원식 선수(수원시청)를 10대 8로 제압, 제주특별자치도에 금메달을 안겼다. 당구 종목 사상 제주도의 첫 금메달로 더욱 값진 결실이었다.

국내 랭킹 5위인 그가 1, 2위를 다투던 전국 16개 시·도 대표 선수를 차례로 꺾는 이변을 일으켰다.

하 선수는 “내년에 열리는 인천 아시안게임에선 당구 종목이 제외돼 아쉽지만 2019년 베트남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선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서귀포시 보목동 토박이인 그는 남주고등학교 재학 시절 선배를 쫓아 당구장엘 처음 갔다.

재미 삼아 큐를 잡은 것이 어느덧 당구 테이블에서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눈동냥 귀동냥으로 배운 실력으로 동네 고수들을 물리쳤다.

한번 큐를 잡으면 30개를 친다는 속칭 ‘500다마’들이 고교생 앞에서 머쓱해졌다.

그는 고3이 되면서 당구를 접은 후 도내 모 대학에 진학했지만 생각했던 대학 생활과 거리가 멀어 중퇴했다.

그는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힘들게 사는 홀어머니에게 당구를 계속 치고 싶다고 얘기했는데 ‘네 뜻대로 하라’며 허락을 해줬다”며 당구 선수로 입문한 계기를 얘기했다.

24살에 서울로 상경한 그는 월 60만을 받고 당구장 일을 거들며 숙식을 해결했다. 그리고 하루 8시간씩 당구를 배웠다.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각도로 공을 맞추는 당구의 지존들이 서울에는 즐비했다.

그는 “서울에선 부모가 아이들의 손을 잡고 당구클럽에 다니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당구 전문학원도 있었다”며 “한국체대는 매년 당구특기생을 뽑는 등 선수층이 두터웠다”고 소회했다.

쓰리쿠션을 전공한 그는 서울 생활 1년 만에 당구를 접었다. 잘 나가던 일부 선수들이 돈 내기(노름) 당구에 빠진 것을 보고 ‘나도 저렇게 되지 않을까?’라며 자괴감에 빠졌기 때문이다.

방황하던 시절 술을 사주겠다는 선배를 따라갔다가 우연히 ‘포켓볼’이란 당구를 접했다.

당시 포켓볼이 유행하면서 남녀노소가 즐기는 모습을 보고 다시 큐를 잡게 됐다.

당구에 ‘기본 가락’이 있던 그는 포켓볼을 짧은 기간에 마스터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세계대회에서 16강에 오르는 등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실력이 늘지 않으면서 슬럼프가 찾아왔다.

그래서 28살에 지인의 도움으로 베트남으로 당구 유학을 떠났다. 2년 동안 베트남에 머물며 포켓볼을 제대로 배우고 익혔다.

그는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는 베트남에선 5살 때부터 당구를 접했던 뛰어난 선수들이 많은데 이들은 담력도 대단하다”며 “이를 반영하듯 최근 동남아와 중국 선수들이 미국 선수를 제치고 세계대회에서 우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학을 갔다 온 후 그는 실력이 늘었지만 2011년 전국체전에선 동메달에 머물렀고, 전국대회에선 매번 준우승에 그쳤다.

이를 악물고 부단히 연습을 한 끝에 올해 전국체전에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 선수는 “당구는 온몸을 이용하는 스포츠여서 체력을 기를 수 있고, 기본에 충실해야 하므로 청소년들의 집중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며 “당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제주에는 포켓볼동우회가 1개에 불과해 저변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를 대표하는 선수로서 아시안게임을 넘어 세계대회에서도 우승을 할 수 있도록 쉼 없이 노력하겠다”고 말을 맺었다.

좌동철 기자 roots@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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