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백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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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새 학기가 시작된 직후 후배 기자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다. ‘올해 백호기 청소년 축구대회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학교는 물론 학부모들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제주일보는 뜻하지 않은 부도 사태로 신문 발행조차 중단될지 모르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신문사의 존폐 위기 앞에서 백호기 축구대회까지 챙길 여력이 없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른 후 또 다른 소식을 접했다.

한 학부모는 백호기 대회를 고대하던 고3 아들이 허탈해 하고 있다며 지인을 통해 정말 대회 개최가 불가능한 지 물어왔다. 일부 고교생은 제주일보 구독운동을 전개해 대회 개최를 이끌어내려 한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나이 든 도민들 사이에서도 백호기 대회에 대한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가슴 아픈 시간들이었다.

이 같은 반응은 백호기 청소년 축구대회가 단지 ‘백호기’라고만 말해도 모두에게 통하듯 이미 도민사회에 깊숙이 자리매김했다는 방증이었다.

사실 해마다 수많은 각종 대회가 열리지만 전국대회도 아닌 도내 대회에서 우승했다고 카퍼레이드를 벌이고, 이를 당연시 하는 행사가 백호기 말고 어디 있을까.

재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응원전을 전개하고 어머니들까지 자녀들과 함께 목이 터져라 외치는 모습을 백호기 말고 또다시 볼 수 있겠는가.

졸업한 지 수십 년이 지난 동문들을 학창시절의 추억으로 이끌어가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행사가 몇이나 될까.

지난 5월 제주특별자치도의회가 도내 11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관심 있는 사안을 안건으로 해 ‘의정체험 모의의회 경연대회’를 개최하자 오현고 학생들은 백호기 청소년축구대회 응원전과 관련된 안건을 상정했다. 투표 결과 백호기 축구대회를 계속 개최해야 한다는 입장이 7표로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 2표보다 압도적이었다.

학생들의 결론은 ‘학창시절 최고의 추억’이었다. 이들은 도내 청소년 축구의 왕중왕을 가리는 백호기 축구대회의 40여 년 전통을 살리면서 오라벌을 뜨겁게 달구는 응원전을 통해 자신들이 가진 열정을 쏟고 꿈을 이루겠다고 결론지었다.

이처럼 백호기대회는 1971년 10월 첫 발을 내디딘 이래 40여 성상을 거치면서 도민 모두의 잔치로 자리 잡았다. 학교에서는 다른 대회는 양보해도 백호기대회는 양보할 수 없다며 벼르고, 선수들은 재학생들의 혼신을 다한 응원 속에 모교의 명예를 위해 쉼 없이 그라운드를 질주한다. 해마다 각본 없는 드라마가 끊임없이 연출되는 까닭이다.

도내 한 언론인은 사석에서 백호기 대회를 가장 부러운 행사로 꼽으며, ‘백호기는 제주일보만의 행사가 아니라 도민의 축제’라고 주저 없이 규정했다.

전통은 흉내 낸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세대에서 세대를 거쳐 전승된다. 백호기 대회가 제주사회에서 그 반열에 들었다고 해도 자화자찬은 아닐 것이다.

제주일보는 독자와 도민의 성원과 사랑에 힘입어 신문 정상화의 길에 들어서자마자 백호기대회의 맥 잇기에 나섰다.

그러나 올해 상황은 녹록지 않다. 계절이 바뀌면서 쌀쌀한 날씨를 마주해야 한다. 내년 제주 전국체전을 앞두고 제주시종합경기장 등 주요 경기장이 개·보수 작업 중이어서 백호기만의 전매특허인 화끈하고 열정적인 응원전도 사실상 어렵다. 시즌이 끝난 상황에서 선수 운영에도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

이 같은 악조건 속에서 뒤늦게 백호기 대회 개최를 알렸음에도 대부분의 학교는 기꺼이 출전을 선택했다. 백호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대회 개최를 최종 확정짓기 전의 일이다.

어느 학교의 교장 선생님께서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백호기 대회는 도민의 자부심입니다.’

홍성배 편집부국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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