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앞에서 노무현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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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문. 스님 /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그는 분명히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라고 말했다. 2008년 2월. 국보 1호 숭례문이 무너지던 날이었다. 숭례문 방화범 채종기란 할아버지는 왜 숭례문을 불질렀냐고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노무현” 때문이라고 말했다.자기 소유의 토지를 노무현이 조금밖에 보상해 주지 않아서 홧김에 숭례문에 불을 질렀다고 목소리 높여 말했다. 노무현 정권 말기, 사람들은 축구에서 져도 노무현 때문이라고 했고, 연예인이 이혼해도 노무현 때문이라고 했던 시절이었다.

그뒤로 5년이 흐른 2013년, 숭례문은 준공후 수개월만에 단청이 벗겨지고 기둥이 갈라지는 등 부실 복원 논란에 휘말렸다. 일본산 화학안료를 쓰고, 덜 건조된 나무를 사용했으며, 무리하게 공기를 단축하느라 부실복원이 되었다는 갖가지 주장이 가중되었다. 문화재청장은 국보 1호의 부실복원 논란에 대해 사과하고 철저한 조사와 오류 시정을 약속했지만, 책임을 지고 결국 중도하차해야만 했다.

그런데 숭례문은 무슨 이유로 국보 1호가 되었던 것일까? 숭례문이 국보 1호가 된 이유는 일본의 조선강점과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숭례문은 1907년 당시 조선에 주둔했던 하세가와 사령관은 서울 교통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헐리게 될 운명에 처한 적이 있었다. 소식을 들은 당시 일본인 거류민단장은 하세가와를 면담, 숭례문의 존치를 설득했다고 한다.

“숭례문은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가 한양에 출입했던 문입니다. 지금 한양에 남아 있는 유적들중에 임진왜란 당시의 유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데, 숭례문을 철거하면 안 곤란합니다.”

실제로 숭례문에 대한 일본측의 인식은 일제시기 내내 여기서 거의 변하지 않았다. 예컨대 1927년 발행된 <취미의 조선여행(趣味の朝鮮の旅)> 책자에서는 숭례문에 대해,  그 옛날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조선정벌 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남대문,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동대문을 통해 경성으로 쳐들어갔다고 하는데, 그 남대문이 이 남대문이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것이 조선총독부가 숭례문을 1호로 지정한 중요한 이유였다. 해방이후 우리정부는 일제의 지정번호를 그대로 답습 숭례문을 국보 1호로 다시 지정했고, 별다른 논의없이 오늘에 이른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가진 숭례문이 국보 1호란 사실이 못 마땅했던 듯 싶다. 그래서 숭례문을 국보 1호에서 해지하고, 훈민정음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를 시작했다. 2005년 감사원은 국보 1호 숭례문에 대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상징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변경했으면 좋겠다는 권고를 문화재청에 전달했다.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도 이를 긍정적으로 수락, 국보 1호를 변경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뜻밖에 문화재위원회가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국보 1호의 변경은 혼란을 초래하고, 국보 1호는 중요성이 아니라 관리를 위한 지정번호이기 때문에 굳이 변경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문화재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자 대통령은 문화재위원회의 의견을 존중, 국보 1호 변경계획을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2008년 숭례문이 소실되었을때에도 , 숭례문 국보해지 문제가 거론되었다. 조선시대 건축한 목조 부분이 모두 소실되었으므로, 더 이상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사라진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였다. 문화재 위원회에서는 국보 1호가 갖는 상징성과 전소하지 않고 석축부분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국보 1호로의 존치를 고집했다.

숭례문 복원과정에서 관리번호에 지나지 않는다던 국보 1호는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다. 복원기간내내 문화재청은 전수가 끊어진 전통기술로 국보1호의 복원에 임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전통기술에 대한 무리한 집착은 결국 숭례문 복원을 전통기술 실험장으로 만들었다. 이제 숭례문은 더욱 심한 홍역을 겪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08년 화재로 원형을 훼손 당하고, 2013년 부실 복원으로 신뢰를 잃은 숭례문은 곧 국보 1호의 해지 논란에 휘말릴 듯하다. 그러나 노무현이 가고 없는 지금 누가 또 다시 국보 1호 숭례문을 정면 조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가 한양입성 기념으로 지정된 대한민국 국보 1호는 과연 언제까지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숭례문앞에서 문득 노무현 대통령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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