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직장 명물 - 남원읍 신례보건진료소장 오성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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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고치고 문학 꿈 키우고'

“천(千)은 너무 멀어서 싫었고 십(十)은 너무 가까운 탓에 제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한 지점에는 백(百)이란 숫자를 꽂아 놓곤 했습니다.”
오성자 신례보건진료소장이 근무하는 좁은 진료소 안에는 주민들의 건강을 지키는 제1선의 파수꾼 역할을 하며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온 흔적들이 가득했다.

진료소 입구에 곱게 정리된 100개의 옹기와 보(아래 아)름구덕(낡은 대바구니에 자투리 천을 발라 만든 구덕), 그리고 지금까지 습작해 온 100편쯤 될 것이라는 수북한 원고 뭉치들.

7년 전 남편과 다툰 후 마음을 달래기 위해 금강경을 옮겨 적었던 종이를 발라 만들기 시작한 보름구덕은 민구(民具)로서뿐만 아니라 작품으로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어떤 색과 섞여도 고유의 광원(光源)을 잃지 않는 땅의 신묘함을 느낄 수 있다는 자투리 갈천을 이용해 만든 구덕을 가지고 얼마 전에는 작은 전시회도 열었다.

오 소장은 “무심코 시작한 일이 이제는 진료소를 찾는 환자들의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을 치료하는 새로운 에너지가 됐다”며 ‘백(百)’과의 약속을 허물 준비가 돼 있는 속내를 드러냈다.

오 소장은 최근 예부터 예절 바르고 양순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는 예촌(禮村) 남원읍 신례1리의 명물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했다.

지난해 가을 계간 ‘생활문학’이 주관한 제7회 한국생활문학상 공모에서 ‘숨비기 꽃’과 ‘굴렁쇠와 비누방울’이라는 작품으로 수필부문 신인상을 수상한 데 이어 올해 초에는 농민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저물녘’이란 작품으로 문단에 정식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숨비기 꽃’은 해녀로 늙어 고된 삶을 마감한 할머니의 죽음을 제주 특유의 색깔로 서술해 소설적인 분위기가 짙은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고, ‘저물녘’ 역시 제주의 개성과 토속미가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옹기와 구덕, 갈옷 등 전통 민예품에 대한 오 소장의 평소 관심이 작품에도 그대로 묻어나는 듯했다.

인생의 열두 대문 중 하나는 글쓰기로 열어야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다는 오 소장은 “하나의 산 속에는 굽이굽이 고갯길이 있는 것처럼 글쓰기 속에만 또 온전히 열두 대문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한 일이었다”며 글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했지만 ‘보름구덕 만들기’처럼 ‘백(百)’과의 약속은 또 한 번 무너질 듯했다.

아마 백보다 너무 멀지 않은 어느 지점에 꽂아 놓을 또 하나의 숫자를 찾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분에 넘치는 일에 사로잡힌 자신을 많이 책망하기도 했다는 오 소장은 “최근 잇단 낭보들이 환자를 돌보는 일이건 작품 활동이건 모든 일에 신심을 갖게 하는 생활인의 자세를 견지하는 데 좋은 기회가 됐다”며 백보다 너무 멀지 않은 다른 지점에 이르기 위해 또 한 번 마음을 추슬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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