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과 보존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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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
21세기 지식기반사회는 첨단과학기술이 다른 학문과 서로 융합하여 발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에 발맞추어 우리는 기존의 질서와 가치관을 끊임없이 재편해 가는 과정에 있다. 최근 들어 대한민국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속적으로 국가브랜드를 높이기 위한 필수과제는 먼저 우리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문화의 보석을 알고 소중하게 가꾸어서 그 감동을 세계에 알릴 수 있어야 한다. 문화융성시대 대한민국의 국격은 모든 국민이 참여하고 함께 협력하며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자긍심을 가지고 열어가는 자세를 갖출 때 높아질 수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 하였다. 미래 인류가 지향하는 가치들인 협동심과 창의성, 나눔과 배려, 소통과 화합, 자연과 인간의 조화, 평화와 생명 존중 사상은 우리 역사 속에 속속들이 새겨져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물질만능풍조와 기계 문명에만 젖어 있어 유형문화 속에 깃들어 있는 정신적 가치를 너무 많이 잊어버렸다. 바로 숭례문 화재사건이 그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숭례문을 물질 또는 형태로만 보았기 때문에 범인이 화풀이 대상으로 삼았던 것인데 그 속에 들어있는 시대의 고귀한 숨결과 민족의 혼을 일찍이 역사교육을 통해 가르쳐 주었다면 사람을 살상하는 일 못지않게 망설임이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일이 저질러지고 난후에 후회해 보았자 소용이 없다. 아무리 첨단과학기술, 건축기술을 적용한다 해도 시대를 잃어버렸고 순수한 정신을 잊었기 때문에 원형 그대로 복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는 창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지키고 보존하여 다음 시대로 넘겨주는 일은 더더욱 중요하다. 지금 문화재 복원사업이 여기저기서 진행되고 있고 또한 보존에 대한 빈번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시대변화와 함께 개발논리도 적용되어야 할 때가 있겠지만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일제 식민지시대 일본인들은 우리 문화의 가치를 너무 잘 알아서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일부러 파괴했고, 우리는 몰라서 스스로 파괴했던 우(愚)를 범했던 일을 시대에 경각심을 가지고 기억해야 한다.

문화재에는 시대정신과 자연에 대한 소통과 존중의 정신이 베어있다는 점은 4대문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 조선시대는 유교이념에 기반한 사회체제를 지향하였다. 따라서 도성에 사는 사람들과 도성을 출입하는 사람들도 유교윤리에 바탕한 심성과 도덕성을 갖추기를 기대하였다. 즉 자연의 이치인 목, 금, 화, 수, 토의 오행(五行)과 인간의 이치인 인, 의 예, 지, 신의 오성(五性)의 상호합일의 원리를 적용하여 사대문의 이름으로 명명하였다. 동대문의 흥인지문(興仁之門)은 나무 (木)에 해당되며 서대문은 돈의문(敦義門)으로 쇠 (金)에, 남대문은 숭례문(崇禮門)으로 불 (火)에, 북문은 숙정문(肅靖門)으로 물 (水)에 해당되며, 흙 (土)에 해당하는 보신각(普信閣)이 새워져있다. 동대문만 유독 흥인지문의 네 글자가 된 것은 동쪽의 지세가 서쪽보다 낮아 지맥을 보강하는 의미로 之자를 더 넣은 것이다. 바로 이러한 지혜는 문을 드나들면서 깨우칠 수 있는 인성교육의 실천이다.

역사문화 현장을 가면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울창한 나무들이다. 몇백년을 역사의 증인으로 지켜온 소나무, 은행나무들의 마음을 인간의 오만함과 무심함으로 헤아리지 못하는 데서부터 문화재 관리의 왜곡이 생기는 것이다. 자연의 순리와 역사의 준엄함에 대한 경건한 마음으로 역사가 주는 교훈과 지혜를 배워야한다. 숭례문이 600여년을 그 자리에서 한결같이 서서 역사를 지켜왔는데 한 순간에 검은 숯덩이로 변했을 때 그 자신 얼마나 놀라고 아팠겠는가도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헤아려야 한다. 정조임금 때 화성건설에서 물목대장과 노역자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기록에 남겼듯이 이제 다시 겸허한 자세로 진정성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임할 때 더 이상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바로 숭례문 복원은 이러한 세울 때의 시대정신과 자연과 인간의 조화의 의미를 아우르면서 기술적인 면을 적용해야 살아있는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빛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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