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선진현장을 가다 - (3) 호주(下)
지방분권 선진현장을 가다 - (3) 호주(下)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지방정부 연합, 주정부.연방정부와 정책 조율

도심에 99층짜리 초고층 빌딩을 지으려는 개발업자는 어디를 찾아가야 할까. 부산이라면 당연히 부산시청을 찾아가야 한다. 법적으로도 그렇고 정치적으로도 그렇다.

그러나 호주의 개발업자는 한국의 광역자치단체에 해당하는 주정부가 아니라 한국의 기초자치단체에 해당하는 지방정부를 찾아간다. 모든 개발허가권을 지방정부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중순 뉴사우스웨일스주의 캔터베리시 안에 99층짜리 호텔을 지으려는 호주의 한 개발업자는 주정부가 아니라 캔터베리시정부와 협의를 하고 있었다.

연방제를 채택한 호주는 주정부 중심의 나라이지만 이처럼 국민들의 실생활과 관련된 업무는 대부분 지방정부 차원에서 이뤄진다.

주정부는 법을 제정하고 정책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뿐 정책에 대한 집행과 허가, 관리 등은 모두 지방정부에 해당하는 시(City) 혹은 현(Shire)의 행정기구가 맡고 있다. 각종 건축물 허가와 도로.공원 건설 및 관리, 쓰레기 처리, 도서관.탁아소.복지시설 운영 등이 지방정부의 주요 업무다.

호주에는 이 같은 지방정부가 주마다 50~170개씩, 전국적으로 700여 개가 있다.

지방정부의 주요 현안에 대한 의사결정은 4년마다 선거로 뽑는 시의원 회의를 통해 이뤄진다. 지방정부의 수장으로 함께 선출되는 직선 시장이 있지만 주요 의사결정을 할 때는 시의원과 마찬가지로 1표를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지방정부의 권한에 대해서는 관점이나 입장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그웬 그레이 호주국립대 정치학과 교수는 “지방정부는 정치적 힘이나 비중이 약한 편”이라고 말했다. 호주 연방 수도 특별구의 마크 퀴아코우스키 국무조정실장도 “주정부가 지방정부를 만들고 없앨 수도 있다”며 “지방정부는 결국 주정부의 틀 안에서 움직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뉴사우스웨일스주 지방정부연합의 데이비드 홀 사무총장은 “지방정부는 지역주민의 이해를 반영하는 정치적으로 독립된 자치단체”라며 “주정부가 정책을 제시할 수 있지만 강요하거나 지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례로 최근 주정부가 시드니의 인구증가에 따른 주택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아파트 개발 정책을 내놓았으나 상당수 지방정부가 환경과 도시미관 보존을 이유로 이를 거부해 갈등을 빚고 있다고 소개했다.

호주에서 한인 최초의 시의원인 남기성 캔터베리시의회 의원은 “호주의 지방정부는 인사, 재정적으로 독립돼 있다”며 “주정부의 눈치를 살필 필요도 없고, 주민들이 주정부에 갈 일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결국 정치제도적 측면을 고려할 때 지방정부의 힘이 약하다고 볼 수 있지만 일선 행정의 측면에서 보면 지방정부는 상당히 독립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한국의 현실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한국과는 달리 모든 건축 및 토지 관련 허가권은 지방정부가 쥐고 있다. 지방정부의 실무를 총괄하는 행정부시장을 비롯한 모든 직원을 자체적으로 채용하기 때문에 인사는 완전히 독립돼 있다. 재산세, 수도세 등 각종 세수로 자체 예산을 충당하고, 그래도 부족하면 은행융자를 받아서 해결하기 때문에 재정적으로도 철저하게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

남 의원은 “물론 주정부에서 예산이 내려올 때도 있지만 그것은 주정부 업무를 대행하는 차원에서 당연히 받는 돈이지 예산지원 형태가 아니다”라며 “한국처럼 예산을 한 푼이라도 더 따내기 위해 로비를 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호주의 지방자치와 관련해 또하나 눈여겨 볼 대목은 지방정부 연합체가 구성돼 주정부 혹은 연방정부의 정책에 간여하는 조율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는 점이다. 주마다 구성된 지방정부 연합과 이것이 모인 호주 지방정부연합은 전체 지방정부의 요구사항과 정책안을 주정부, 혹은 연방정부에 전달하고 조율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지방정부 스스로 정치적.정책적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힘을 모은 결과이다.

친목모임의 성격에 머물고 있는 한국의 기초자치단체장 협의회와는 성격이 크게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춘추6사공동
춘추6사공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