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겨울방학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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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혜 부모교육 강사>

“얘들아, 이번 겨울 방학에도 엄마가 내는 숙제가 있어!”

 

겨울 방학이 막 시작될 즈음, 초등학교 2학년과 일곱 살 난 유치원생인 오누이에게 엄마가 숙제를 내밀었다. 그것은 바로 집에서 할아버지 댁까지 둘이서만 다녀오기였다. 집에서 출발할 때 시내버스를 타고 터미널까지 가서 승차표를 구매하고 해당 시외버스 구역으로 들어가서 버스를 찾아 앉아야 한다. 그리고 할아버지 댁 마을 입구 정류장에 내려 집까지 걸어가야 하는 일이다. 물론 돌아오는 일까지 스스로 해야 한다.

 

큰아이가 유치원 다니던 일곱 살 여름방학부터 시작된 이 특별한 숙제는 이미 우리 집의 연례행사가 돼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 언제 시행하느냐만 남았다. 그때 첫 숙제는 ‘이모 집에서 이틀 밤 묵어오기’였는데 나이든 이모 댁에는 놀아줄 만한 사촌도 없어 아이는 글자 그대로 숙제이기 때문에 견뎌낸 시간이었다. 아이가 혼자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이모가 위로를 하려고 하는데, 아이는 “이모, 이모는 일곱 살 때, 이모네 이모 집에서 잠 자 봤어요? 지금 내 맘 어떻게 알아요!”라고 말해서 이모를 당황하게 했다고 한다.

 

드디어 계획했던 그 날이 왔다. 겨울 날씨는 아무리 친절하다 해도 쌀쌀하고 바람이 불었다. 차비를 넉넉하게 계산해서 주머니에 넣은 채 두 아이는 손을 꼭 잡고 집을 나섰다. 할머니께 드리겠다고 사탕 한 봉지 챙기는 일도 잊지 않았다. 보내는 엄마 마음도 걱정 반, 불안 반에 순간 계획을 번복하고 싶은 마음도 가득하지만 이게 진짜 살아있는 공부이겠거니 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배웅하며 서 있다(그때 아이들은 휴대폰도 없었다). 아이들이 시골에 도착할 시간이 조금 지났을까 싶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어떵허난 아이들만 보내시니게~, 야네 이추룩행 다시 보내면 될 거가?”

 

불안한 시어머니의 전화다. 데리고 오시겠다고 하셔서 겨우 말리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하는 시간에서야 아이들은 초췌한 모습으로 집에 들어섰다. 얼른 달려가 두 아이를 얼싸안았다.

 

“엄마, 동생이 버스에서 자꾸 잠을 자서 깨우느라 혼났어! 근데 돈이 어디 갔지?”

 

갑작스럽게 들어선 손녀, 손자를 맞아 점심을 먹이고 조금 쉬게 했다가 돌려보내려는 할머니는, 그렇게 돌아가는 아이들이 가여워서 용돈을 주신 모양인데 자는 동생 깨우랴, 제 정류장에서 내리랴 바쁜 통에 주머니에 둔 돈은 흘려버린 모양이다. 아이 표정에 안타까움이 흐른다.

 

“괜찮아! 너희들이 아무 일 없이 잘 돌아와 준 것보다 귀한 것은 없어!”

 

비록 할머니가 주신 용돈을 잃어버렸지만 그날 우리 아이들은 세상을 향한 멋진 출발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 어떤 말로도 이들의 성취보다 값진 것을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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