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 바다를 품은 하도리 '문화의 바다'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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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체험마을로 조성, 옛 방식의 체험 활동 관광객에 인기
   
 (사진 해녀물질 체험)=구좌읍 하도리를 방문한 관광객들이 잠수복을 입고 해녀를 따라 각종 소라를 캐보는 해녀 물질 체험에 나선 모습. 초보인 것을 감안해 스노클링을 착용하고 있다.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40㎞ 떨어진 구좌읍 하도리는 청정한 바다를 품고 있다. 인구는 1935명(남 985·여 950명)으로 해녀가 260명에 이른다.

여성 3명 중 1명이 물질을 하면서 해녀가 가장 많은 마을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 기준 도내 마을어장 수입은 연간 206억원인데 이 가운데 하도리가 8%인 17억원을 벌어 들였다.

소라·전복·성게·톳·우뭇가사리는 일본에 수출되면서 청정한 해산물은 마을을 풍요롭게 했다.

그런데 2009년 위기가 닥쳤다. 석회질 성분의 산호초가 바다 밑바닥을 하얗게 만드는 ‘백화현상’이 발생, 새끼 소라나 전복을 바다에 뿌려도 해초가 없어 잘 자라지 못한 것이다.

연간 70t을 채취하던 소라는 2009년 31t으로 급감했다.

해녀들이 가쁜 숨을 참다가 마지막에 ‘호오이~’ 숨비소리를 토해냈지만 형편이 나아지질 않아다. 잡아들이기만 했던 바다에 휴식을 주면서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다.

2010년 관광과 체험을 접목한 어촌체험마을이 하도리에 탄생한 배경이다.

처음엔 해녀들이 반대를 했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물질하는 방법을 관광객들에게 배워줄 겨를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일각에선 ‘동물원 원숭이’에 빗대며 남에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부끄럽다고 얘기했다.

임백연 어촌계장은 주위의 반발을 무릅쓰고 ‘총대’를 맸다. 공모 사업에 선정돼 국비·도비 4억7500만원, 자부담 2500만원 등 총 5억원을 들여 쓰레기가 널려 있던 동동포구를 정비했다.

   
(사진 고망 낚시)=전통어법을 재연해 대나무 낚시대로 구좌읍 하도리 갯바위에서 어랭이와 코생이 등을 낚아보는 ‘고망 낚시’ 체험의 한 장면.
이곳에는 해녀체험안내센터, 불턱, 원담, 카페, 데크시설을 갖췄다. 얕은 해안에서 보말과 게를 잡는 바릇잡이를 비롯해 고망 낚시, 조류의 차를 이용해 고기를 잡는 원담 체험, 테우 낚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어 투명 카약 타기, 스노클링, 보트 체험도 도입했다.

처음엔 반대했던 해녀들도 깊은 바다에서 딴 보말을 얕은 바다에 뿌려주며 관광객들을 반겼다.

물질을 가르쳐 주는 대신 일당 5만원을 받으면서 서로 먼저 하겠다고 경쟁하는 바람에 나중에는 순번을 정했다.

해녀들이 젖은 옷을 말리기 위해 모닥불을 지폈던 탈의실이자 휴식공간인 ‘불턱’에선 체험객들이 잡은 해산물을 맛볼 수 있게 했다.

하도어촌체험마을은 지난해 1만2000여 명이 방문, 1억5000만원의 소득을 창출했다. 그런데 방문객의 60%는 5월에서 8월까지 4개월 동안 집중되면서 사계절 방문을 이끌어 낼 묘안이 필요해졌다.

이를 위해 하도 해안도로를 따라 4.4㎞에 걸쳐 도보 여행을 할 수 있는 ‘숨비소리길’이 조성됐다. 숨비소리길은 철새도래지에서 천연기념물인 문주란이 자생하는 토끼섬을 거쳐 해녀박물관으로 이어진다.

특히 길 중간 중간에는 옛 그대로의 방식으로 복원한 불턱과 선착장을 볼 수 있다. 이 길은 앞으로 ‘생태 박물관’이 조성될 예정이다.

생태 박물관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축담 방식으로 해안에 있는 돌을 이용해 불턱과 원담, 소규모 선착장 등 옛 어촌환경을 그대로 재연하는 것이다.

주민들과 해녀들은 황폐해진 바다를 살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작은 소라는 채취하지 않고 자원 관리에 힘썼다.

또 보상(돈)을 받는 대신 해안가에 양식장을 내주는 것을 허락하질 않았다. 그래서 하도리는 도내 어촌마을 중 유일하게 양식장이 없는 곳이 됐다.

그 결과, 연간 생산량이 30t까지 떨어졌던 소라는 2012년 108t, 지난해 130t을 채취하기에 이르렀다.

과거 하도리는 왜구의 침입이 잦아 조선시대인 1510년 ‘별방진’(특별 방어진)이 축성됐던 동부 지역 최대 군사방어기지였다. 풍요로운 마을은 침략과 수탈을 당하기 일쑤였다.

1932년 해산물을 수탈하고 해녀를 착취하던 일제와 관제 조합에 맞선 해녀항일운동은 하도리에서 시작됐다.

온갖 시련을 이겨낸 해녀들의 강인한 개척 정신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하도리는 어촌 체험문화를 선도하며 해녀 유산을 계승, 보존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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