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기다릴 줄 아셨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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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혜 부모교육 강사
     

 큰아이가 다섯 살 때의 일이다. 오랜만에 친정어머니께서 집에 오셨는데 큰아이가 여간 까탈이 아니다. 그 즈음 아이와 내내 실랑이가 있을 때라 엄마인 나 역시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마구 화를 내었다. 그 모습을 보시던 어머니께서 “꼭 니 닮았져!” 하신다. 내 딸 아이가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내게 대드는 모습이 내가 다섯 살 때와 너무도 닮았다며 웃으신다.

 

순간 궁금한 게 한 가지 떠올랐다. 나는 이 아이가 너무 말을 안 들으면 때리면서라도 이 버릇을 고쳐야 아이가 자라면서도 주도권을 잃지 않고 엄마 노릇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는 매를 맞거나 다그침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그런 내 생각을 말씀드리면서 기억에 없는 건지 때리지도 않고 지금 나처럼 닦달하지도 않았는지 여쭈어 보았다. 당연히 후자였다.

 

“누구 닮앙 니가 착하지 않으크니? 놔두면 다 잘 크주!”

 

물론 어머니와는 근본적으로 한 가지 차이가 있다. 어머니께서는 일곱 남매를 낳아 기르는 중 나는 막내였고, 나는 이 아이가 첫 번째 아이였다. 어머니는 일곱 아이를 낳아 키우는 동안 믿고 기다리는 것보다 좋은 약은 없다는 것을 깨우치신 셈이고 나는 아직 그럴 여유가 안 생긴 것이다. 뭔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한 번은 아버지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다. 아마 초등학교 3학년쯤이었을 게다. 그런데 내 입에서는 바로 “마우다(싫어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아버지께서는 야단치지 않으셨다. 웃으시면서 “한 번 ‘허우다’도 해보라” 하신다. ‘허우다’라는 말은 제주어에도 없다. 만날 ‘마우다’만 하는 딸이 마냥 귀여우신 아버지의 한 마디였는데 그것마저도 나는 ‘마우다’ 하고 말았다.

 

부모님께서 부당하게라도 대하는 경우엔 단 한 번도 지지 않고 말대꾸를 하는 나를 보며 친정에 다니러 온 큰언니가 놀라 입이 벌어질 지경이었던 내가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렇게 말대꾸하던 실력이 말하기 연습이 되었는지 지금 나는 ‘입으로 먹고 사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기억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다섯 살짜리 딸아이가 나를 닮아서 그렇다는 것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왜 나는 아이에게 조급하게 야단치고 가르치려 하고 있을까? 그건 바로 기다리면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 나의 부모님께서도 걱정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겠지만 내 안에 착한 부분이 있다는 것은 믿고 기다려주신 것이다.

 

어머니께 ‘꼭 니 닮았져!’라는 한 마디를 들은 이후 나는 달라지기로 결심했다. 내가 믿고 기다려주는 만큼 내 아이가 자랄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그리고는 아이를 닦달하기 전에 내가 더 성숙해져야겠기에 이런저런 책을 보며 지혜를 얻으려고 노력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부모님의 한 마디가 깨달음의 기회가 되었던 셈이다. 올 한 해 자녀를 한 번 더 믿고 기다려주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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