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표정을 짓는 공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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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소설가
세상 살다보면 누구나 억울한 일 한두번 겪기 마련이죠. 예전에는 이게 힘이 없는 사람과 재수가 없는 사람들이 겪는 일들이었지요.

어느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하루 묵으려고 어느 집에 머뭅니다. 해는 서산에 걸리고 나그네는 봉당에 앉아 주위를 살핍니다. 그때 마당에 무언가 반짝 빛나는 것이 보입니다. 저런, 옥구슬이 떨어졌군, 하고 그걸 주워 주인에게 돌려줄 생각을 하는 순간 그 집의 거위도 햇빛에 반짝이는 구슬을 본 모양입니다.

저녁에야 주인집은 옥구슬이 없어진 것을 깨닫습니다. 구슬을 어딘가에 흘렸다는 생각보다 누군가 훔쳐갔다는 생각을 먼저 하는 것이죠. 나그네는 사람들에게 묶이고, 날이 밝으면 관가로 끌려갈 참입니다. 나그네는 자기 옆에 거위를 함께 묶어달라고 말합니다. 다음날 아침 나그네 옆에 묶인 거위가 눈 똥에 옥구슬이 나왔습니다. 진즉에 말하면 지난밤 풀려났겠지만, 그러면 죄 없는 거위가 성급한 사람들에게 배가 갈려 목숨을 잃었겠지요.

톨스토이의 소설 ‘하느님은 아신다. 그러나 기다리신다’에는 그보다 끔찍한 얘기가 나옵니다. 어느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여인숙에 듭니다. 그날 밤 여관주인이 누구에겐가 살해되고 나그네는 살인 누명을 쓰고 먼 곳에 있는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청춘을 감옥에서 다 보내고 머리까지 허옇게 센 노인이 되었을 때 진범이 들어와 지난날 여인숙 주인 살해사건을 자기가 저질렀다고 말합니다.

끝내 진실이 밝혀지긴 했지만, 감옥에서 보낸 저 청춘을 어떻게 할까요? 진실이 밝혀져도 이보다 더 억울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그런데도 주인공은 하느님이 진실을 저버리지 않았다는데 감사합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관료들 가운데 자신의 업무와 관련해 억울한 일을 당한 듯한 표정을 짓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이 보면 어디 가서 누구에게도 억울한 일 절대 당하지 않을 것처럼 힘 있고 권력 있는 고위공직자들이 왜 저렇게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윤진숙 해수부 장관이 얼마 전 여수 기름유출 현장에서 코를 막은 사진이 신문에 실려 논란이 되었습니다.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장관이 어떻게 현장에 와서 피해주민들 앞에 코나 틀어막는 모습을 보이냐는 질타가 이어진 것이죠.

여기에 대해 윤장관은 어떤 방송에 나와서 자신이 배려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것 같다, 기침이 자꾸 나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봐 입을 막은 것이고, 냄새 때문에 입을 막았다는 것은 오해라고 매우 억울하다는 얼굴로 해명했습니다. 그것이 사실에 맞고 안 맞고를 떠나 이 분, 배려라는 말을 어떤 때 쓰는 것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 같습니다. 어떤 문제를 해명하러 나와 국민들 앞에 자신이 배려를 너무 많이 해서 그렇다는 말을 방송에까지 말할 정도면 이건 국민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말의 기본을 모르는 막말 수준인 거지요. 당연히 논란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거지요.

이보다 먼저 카드사의 정보유출 문제가 터졌을 때에도 그것이 국민의 잘못인 양 막말을 하고, 그게 문제가 되자 거듭 죄송하다고 사죄를 한 장관이 있었지요. 공직자라면 절대 해서는 안되는 말의 잘못을 그냥 어쩌다 할 수 있는 실수 정도로 여길 때 저절로 억울하다는 표정이 지어지는 것입니다.

고위공직자 기용 때 심심찮게 불거져 나오는 논문표절 사건들도 그렇지요. 밝혀지면 다들 첫마디에 사실이 아니라며 억울하다고 말합니다. 공방 끝에 해당 학교와 학계에서까지 표절로 인정해도 자기는 억울하다며 끝까지 공직의 한 자리를 차지하거나 국회의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엔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사람만 억울한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의 고위공직자들은 왜 그렇게 이상한 쪽으로 억울한 얼굴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이러다가는 앞으로 자칫 억울한 사람들의 억울한 내각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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