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선진현장을 가다 - (4)독일(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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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지방이 분야별로 실질적 수도 역할

한국의 대선 열기가 채 식지 않은 지난해 12월 25일 독일을 방문하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수도 베를린으로 가는 국제 직항편이 없다는 점이다. 아시아에서 베를린으로 가기 위해서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려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독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닌 ‘서울’이란 개념을 우선 머리 속에서 지워야 한다. 독일에서는 한국과 같이 ‘중앙’과 ‘지방’이 없다. 한국의 수도권처럼 모든 것이 집중된 ‘중앙’으로 부를 수 있는 지역이 없는 것이다. 수도인 베를린은 대통령과 의회가 있는 단순한 행정수도일 뿐이다. 굳이 한국처럼 ‘중앙’과 ‘지방’의 개념을 적용시킨다면 ‘중앙’이 10여 곳에 이른다. 뮌헨은 경제, 프랑크푸르트는 금융과 거점공항, 함부르크는 무역과 항만, 하이델베르그는 교육의 중앙, 즉 각 지방이 분야별 수도로서 실질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또한 특화된 각 도시는 세계화 시대의 중심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독일 지방자치 연구기관인 나우만재단의 하세머 박사는 “뮌헨은 남북 유럽을, 프랑크푸르트는 유럽 금융권을, 함부르크는 항만을 통해 미주 등 다른 대륙을 연계하는 기능을 하는 등 지방 각 도시가 국제화 시대의 중추 기능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행정수도인 베를린은 시 재정이 파산선고를 받고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는 지방도시일 뿐이다. 인구 350만인 베를린시에 있는 대기업 본사는 게링스사 하나 정도다. 베를린 자유대 정치.경제학부 박성조 교수는 “수도의 개념을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으며 문화.정보.경제 등 모든 분야를 수도 이외의 지역이 골고루 나눠 가지고 있다”며 “독일의 지방화 전략은 21세기 전략과도 맞물려 있다”고 밝혔다.

독일 정부는 통독 이후 수도를 본에서 베를린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도 철저하게 ‘지방 분산’ 원칙에 따라 행정 기능을 나누어 이전했다. 연방정부 산하 18개 기구 중 10개만을 베를린으로 이전했으며 각종 국제기관은 작은 도시인 본의 공동화를 막기 위해 그대로 남겨두었다.

전 국토에 걸친 이러한 기능 분산은 독일이 지난 50년간 추진해온 ‘지방분권’을 바탕으로 한 국가발전 전략에 기인한다. 독일에서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하부 기관이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16개 연방주로 구성된 독일에서 중앙정부의 기능은 필수적인 일부로 제한된다. 외교.국방과 관세 및 공공서비스 등 일정한 부문에서만 권한을 행사한다. 나머지 교육.경제.환경.경찰.무역 등의 기능은 지방 정부의 몫이다. 각 지방이 작은 국가로서 기능을 수행하는 셈이다. 물론 이러한 자치권 행사에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 외에도 재정권 확보가 필수적으로 뒷받침되는 탓에 가능하다. 뮌헨시의 토마스 피셔 공보관은 “전체 세수를 중앙정부가 절반, 주정부와 자치단체가 나머지 절반을 나눠 갖는다”며 “또 제도적으로 잘사는 주가 못 사는 주를 도와주도록 돼 있다”고 설명했다.

필요에 따라서는 지방이 중앙 정부에 앞서 국정의 주도권을 행사하기도 한다. 독일은 우리의 국회 기능을 가진 연방의회(Bundestag) 외에 지방 정부의 대표 모임인 연방회의(Bundesrat)가 있다. 1992년 만들어진 연방회의는 16개 주 주지사와 인구비율에 따라 위촉된 위원 등 총 64명으로 구성되며 주요한 입법 및 행정과정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한다. 즉 지방의 발전과 지방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국책 사업이나 세재개편 문제 등을 다루며 입법청원의 승인권을 갖고 있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됐지만 단체장이 자치단체의 관리자 역할에 머무르고 있는 우리와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독일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이러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입각한 적절한 권한 분배를 통해 국가 경쟁력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베를린대 박 교수는 “21세기 세계화는 지방화에 바탕을 둔 중앙과 지방 간의 유연한 협력관계가 필요하며 중앙집권이 강화되면 될수록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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