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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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졸업이 최종학력인 택시 기사는 넉넉하지 않지만 단란한 가정을 꾸려가는 평범한 아버지였다.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에 보내지 못한 딸이 대기업에 취직하자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을 한다.

그 딸은 얼른 돈을 벌어 아버지 차도 바꿔주고 동생 공부까지 시키겠다며 열심히 회사에 다닌다.

그러나 입사한 지 2년만에 그 딸은 백혈병에 걸려 집으로 돌아온다.

그 전에는 부모에게 아프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병은 치료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다.

왜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느냐는 아버지에게 그 딸이 하는 말은 “좋은 회사 다닌다고 자랑한 게 누군데! 내 그만두면 아빠는 머가 되나!” 딸이 말에 아버지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다.

아픈 딸을 자신이 운전하는 택시에 태우고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숨지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하는 부부. 그러나 그 아버지는 딸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기로 하고 대기업을 상대로 무모(?)한 싸움을 시작합니다.

기자가 최근 본 ‘또 하나의 약속’이라는 영화의 큰 줄거리이다. 이 영화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백혈병에 걸린 후 2007년 3월 사망한 고(故) 황유미씨의 실화를 다룬 영화이다.

많은 영화들처럼 화려한 액션신도, 컴퓨터 그래픽도 없고 호화 캐스팅도 아니지만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1주일이 지난 오늘까지도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오늘 6·4 지방선거 도의원 예비후보 등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선거 레이스가 막이 오른다. 103일 후면 4년간 제주를 책임질 도지사와 도의원들이 선택된다.

많은 예비 후보자들이 제주특별자치도의 미래를 책임지겠다고 많은 약속을 쏟아내고 있다.

공식적인 선거 운동이 시작된 것도 아닌데 벌써 이들이 쏟아내는 약속이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벌써부터 예비 후보들이 무슨 약속을 하고 있는지 기억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이들이 쏟아내는 약속은 개인과 개인의 약속이 아니다. 공적인 약속이다. 4년 전 지방선거에 출마하고 당선된 정치인들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는 유권자가 몇이나 되는지 의문이다. 기자 역시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지 못하니 말이다.

그 정치인들이 2014년 2월 ‘또 하나의 약속’을 쏟아내면서 유권자들에게 선택을 부탁하고 있다. 근대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신분에서 계약으로’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선거 역시 계약이라고 볼 수 있다. 예비 후보자들은 자신들의 내놓은 약속을 통해 유권자들과 계약을 맺는 것이다.

그 계약은 쌍방이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어느 한 쪽이 그 의무를 소홀히 할 때 그 계약은 당연히 무효가 된다.

당선자들은 당연히 자신들이 내놓은 약속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유권자들은 투표만하고 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계약의 한 당사자로서 상대방이 계약 조건을 끝까지 잘 지키는지 확인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우리 유권자가 당선자들의 내놓은 약속의 이행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음으로써 계약 파기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영화에서 딸을 잃은 후 아버지는 노무사와 술을 마시면서 이렇게 말한다. “멍게는요 태어날 때는 뇌가 있는데, 바다 속에서 자리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뇌를 소화시켜 버린대요.”

우리도 지금 스스로 멍게처럼 자신의 뇌를 소화시켜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때다.

<부남철 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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