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대학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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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식. 초당대학교 총장
   
지금 우리의 대학들이 전례 없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특히 지역소재 사립대학들을 중심으로 ‘안팎에서 어려운 위기를 맞고 있다’는 말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대학의 위기는 지난 27일, 정부가 발표한 “대학구조 개혁안“에도 잘 나타나 있다. 급감하는 입학 적령인구에 대한 사회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하여 향후 9년 동안 현 입학정원의 33%에 해당하는 16만 명을 감축하겠다는 것이 주요골자이다. 이를 위하여 모든 대학을 5단계로 분류 평가하여 하위 2단계는 퇴출시켜 나가겠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점잖게 표현해서 조정이지, 실제는 대학의 수와 양을 대폭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요즘 대학총장들은 깊은 시름에 빠져 있다. 사실 정부가 주도하겠다고 나서는 대학의 구조조정도 그렇지만, 대학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대학구조정은 인구의 감소로 인한 사회적 여러 현상의 한 단면일 수 있다. 문제는 유독 이 구조조정이 대학들에 대한 부정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꼭 필요한 것처럼 부각되며 대학이 폄하 당하고 있다는데 있다.

대학에 대한 부정적 논란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등장한 ‘반값 등록금’이라는 다소 정치적 색채를 띤 슬로건에서 촉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학부모들의 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대학에, 아니 등록금에 관심을 가지면서 증폭되었기 때문이다. 등록금을 낮추기 위해서 대학들을 압박하며 극히 일부 대학의 부도덕과 부실이 필요 이상으로 부추겨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사실 대학의 생사가 걸린 ‘구조 조정’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학 정신을 지키는 것’이다. 진행되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학들이 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지금과 같이 취업률, 학생 충원율 같은 정량 지표에만 치중 할 때 이 정신은 훼손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자기중심적 생각일지 몰라도, 우리나라의 대학들이 나는 정말 자랑스럽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계속되는 한국교육의 예찬이 아니더라도,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민주화와 산업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그 열정과 땀이 어디로부터 나왔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열악했던 강의실과 복도에서, 그리고 주린 배를 안고 앉은 교정 앞 잔디밭과 선술집에서의 그 뜨거웠던 열기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대학정신이라고 부르고 싶다. 가진 것도 없이, 도전정신 하나로 뭉쳐, 짧은 영어의 두려움 속에서도 중동, 동남아 등으로 떠났던 그 시절 젊은이들의 치열했던 정신을 오늘 되새기고 싶다.

쉽지는 않겠지만, 입학인구의 급감이나 취직의 어려움 같은 문제는 결국은 극복 될 수 있다고 본다. 진정으로 걱정스러운 것은 대학정신의 훼손이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늘 더 중요하다.

대학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모하여 왔다. 중세 초기 유럽의 대학들은 배우고 가르치고자 하는 교사·학생들 간의 길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어 시대의 문제를 인지하고 비판할 수 있는 그런 곳으로 발전하였고, 그 후 학문을 배우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곳으로 대학은 변모하였다. 20세기에 이르러서는 개인들의 생각을 공유하며 자유롭게 토론하면서 사회를 발전시켜 왔다.

이제 와 새삼 ‘대학은 우리에게 무엇인가’와 같은 원론적 물음을 되풀이 할 이유는 없다. 다만 난해한 고차원 미분 방정식과 같이, 즉 국립과 사립, 소규모대학과 대규모대학,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 등 여러 요인이 심하게 얽혀 있는 대학들의 이해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기본을 되짚어 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어려울수록 기본에 충실해야하기 때문이다.

혹시 대학이 세상에서 부와 출세를 얻기 위한 인적 지적 인프라 만을 제공하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지는 아닌지. 더 이상 학문의 공간은 특별하지 않고, 그런 공간이 세상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생각조차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지는 않은지. 인성과 지성 그리고 인문학과 같은 말들이 그저 사치스럽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꼭 되돌아보아야 한다.

흔히 교육을 국가의 백년대계라 한다. 이번 정책 시행에서는 효율과 효과, 시효에만 급급하지 말고, 대학 본연의 의미와 임무에 대한 성찰을 정부가 심도 있게 해 줄 것을 그 어느 때보다 강조하고 싶다. 대학도, 이에 맞춰 우리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 일본의 우경화와 중국의 대국화 사이에서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가와 같은 본질적이고 국가적인 물음에도 보다 치열하게 답해야한다. 대학이 결국 우리의 희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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