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생명 지하수 - 제1부 ③상수도를 찾아서
제주의 생명 지하수 - 제1부 ③상수도를 찾아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급수전마다 물허벅.양동이 행렬 이어져
1950년대 산지천, 제주시민의 가장 중요한 급수원

1957년 6월 24일 저녁.

제주시내 10곳의 공동급수전에서 맑은 물이 힘차게 흘러나오자 공동급수전 앞에 몰려 있던 아낙네들은 저도 모르게 환호성을 터트렸다.

이날 생애 처음으로 가까운 곳에서 음료수를 마련하게 된 아낙네들은 물허벅.양동이 등을 들고 급수전 앞에서 행렬을 이뤘으며, 간혹 앞을 다투다가 물그릇을 깨트리는 혼란까지 초래했다.

광복이 됐지만 도내에 상수도가 시설된 곳은 일제시대 때 시설을 갖춘 서귀포 일부 지역과 추자도뿐이었고 제주시지역은 여전히 산지천과 가락천.선반내 등에 음료수를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들 수원지는 인근에 우후죽순 들어선 무허가 건축물에서 버려지는 각종 오물 때문에 심각하게 오염이 진행됐다.

또 장기간 급수시설이 방치되면서 시민의 위생을 위협하면서 사회문제로 비화되기 일쑤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제주시는 용천수나 봉천수에 의존하던 오랜 전통을 깨고 계획적인 물 공급을 위해 1953년 12월 23일 제주시내 사라봉 인근에서 상수도사업에 착수했다.

이 때 착수된 금산수원개발사업은 국고보조금 확보난과 자재 도입 부진 등 산고 끝에 1957년 6월 24일 첫 공동급수전 급수를 시작으로, 7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수돗물을 공급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당시는 여과시설이 안돼 저수지에서 소독만 하고 수돗물을 내보냈다.

제주시 상수도는 이후 수도관을 지속적으로 확장하면서 1959년에는 가정수도전과 공동수도전 등을 합해 급수전이 600여 군데에 달했으며, 여름철에는 1일 급수량이 평균 1000t을 상회했다.

제주시는 도심 지역의 음료수 공급과 소화전 시설, 그 밖의 선박급수문제 등을 점진적으로 해결해 나감으로써 도시로서 면모를 갖춰갔다.

이 같은 상수도사업은 한림.애월.모슬포.추자도 등으로 확대돼 갔다.

1959년부터는 집단거주지역에 대한 간이수도 시설을 위해 수원조사가 시작됐으며, 이를 바탕으로 제1수원지(산천단 용천수).제2수원지(열안지 용천수).외도수원지 공사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용천수가 없는 거의 대부분의 중산간마을은 여전히 장구벌레가 우글거리는 봉천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이 때문에 수질이 불량한 물로 인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것은 물론이고, 가뭄 때면 그나마 봉천수마저 말라붙어 물허벅을 지고 해안마을로 나서야 하는 괴로움이 끊이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제주도는 정부와 미국의 대외원조기관인 USOM의 지원으로 1961년 초부터 중산간지대의 심정굴착 가능성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중산간의 물문제 해결을 위해 지하수 개발에 눈을 돌린 것이다.

그 해 10월 10일 도내 최초로 애월읍 수산리에서 김영관 당시 도지사와 지역주민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미국인 기술자에 의해 심정굴착공사가 착공됐다.

수산리는 북제주군내에서 식수 사정이 가장 나쁜 중산간마을로, 주민들은 수백년간 그렇게도 열망해온 식수문제가 해결되는가 하는 벅찬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수산리는 봉천수에만 의지해온 중산간마을에 대한 심정굴착공사의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모델케이스여서 결과에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12월 13일 73m를 파내려가 양수시험을 한 결과 마침내 1일 395㎥의 지하수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제주도에서도 관정식 지하수 개발이라는 전기가 마련됐다.

이에 고무받은 제주도는 도내 일원에서 심정굴착작업을 실시해 이듬해 7월 31일 한림읍 대림리에서 두 번째로 수맥을 발견하는 개가를 올렸다.

이 같은 관정 개발사업은 간이수도 공급사업과 병행해 실시됐는데, 1960년대 말까지 도내 58곳에서 이뤄져 이 가운데 19곳에서 지하수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용천수 수원이 없는 중산간 마을에 양질의 수돗물을 공급하는 계기가 됐다.

1960년대 중반 제주도를 누비며 조사활동을 벌였던 지리학자 우락기 교수는 저서인 ‘제주도’에서 당시 중산간 10여 곳에 개발된 이들 지하관정을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1960년대 들어서면서 제주도는 도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문제로 대두된 음료수난을 타개하기 위해 중앙의 지원을 얻어 상수도시설 확충, 집단거주지에 대한 간이급수공사, 심정굴착에 의한 지하수 개발 등을 추진했다.

이 같은 노력이 서서히 성과를 드러내면서 제주도 생성 이래 도민이 겪어 왔던 물 문제는 해결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도민의 기대감 또한 급속하게 높아졌으나 양질의 물을 충분하게 얻기 위해서는 더 많은 투자와 노력, 그리고 시간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