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국 왕궁의 창조적 복원
탐라국 왕궁의 창조적 복원
  • 제주신보
  • 승인 2014.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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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철. 前 제주문화원장 / 수필가
   
제주의 역사상 탐라국 시대는 고을라 시왕으로부터 45대 고자견 왕까지 3275년이다. 고려국에 병합된 후 초대 고말로 성주로부터 17대 고봉례 성주까지 464년도 세습왕조의 형태였으니 3739년이 탐라국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긴 세월 탐라국 왕은 있었지만 왕궁은 없다. 본래 왕궁이 없었던 것인가. 있었지만 왕궁지도 찾지 못하는 것인가. 없었다면 탐라국은 허구가 되고 만다. 제주 역사의 뿌리를 찾고 가꾼다는 것은 제주인들의 정체성에 관련된 문제이다. 지금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위해서 왕궁 복원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여러 해 전 나는 일본국 오키나와에 다녀온 일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최후 전투에서 처절하게 죽어간 혼령들을 달래기 위해 건립한 ‘평화기념공원’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오키나와는 본래 류큐왕국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군사를 일으켜 침탈, 메이지유신 때 강제 합병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엔 17년간의 미군통치를 거쳐 1972년 본토로 귀속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내에서는 유일하게 오키나와에서 지상전이 벌어졌다. 3개월에 걸친 전투로 민간인을 포함해 24만 856명이 사망, 피의 강을 이룬 전투, 미군도 1만 명의 전사자를 냈다. 그뿐인가. 전쟁 당사국도 아닌 한국인도 1만 명 이상 사망했다. 처참한 이 전투 때문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나는 그 때 오키나와에서 류큐국 왕성을 보았다. 그 왕성은 오키나와 현 최대 규모의 성으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었지만 1945년의 오키나와 전투로 인해 왕궁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전쟁 후엔 류큐대학을 건설하면서 왕성마저 허물어버렸다. 1980년대 초 류큐대학이 이전되면서 성벽과 건물의 기초 일부가 남아있는 것을 토대로, 본격적인 복원에 들어가 1992년엔 왕궁도 성도 복원되었다. 2000년 12월엔 왕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류큐국의 역사를 자랑하며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제주에도 탐라국 왕궁을 복원하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이탈리아 역사가 베네데토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 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 말을 의미 있게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저 먼먼 옛날 제주 선인들이 이루어 놓은 탐라국의 역사 문화를 오늘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해석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국정운영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창조경제는 사고와 행동이 예전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전환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개인의 성공 원천도 돈이나 기계 혹은 장비가 아니라 아이디어에 있다는 말이다.

탐라 왕궁의 복원도 이와 같이 창조적 발상으로 접근해야 한다. 왕궁 지를 찾지 못한다 하여 복원할 수 없다면 탐라국의 역사는 어찌할 것인가. 관덕정 부근 어디쯤에 성주청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선시대의 목관아가 그 곳에 있다는 것은 탐라국 시대에도 이곳이 통치의 중심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것은 분명 상황적 근거가 될 수 있다.

제주문화융성위원회가 지난 2월 25일 출범하였다.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에 문화를 더해 제주의 가치를 높이자는 것이다. 문화란 인간의 행복을 만들어가는 수단이다. 제주문화의 뿌리 탐라 왕궁의 창조적 복원은 제주문화 융성으로 가는 길에 디딤돌이 될 것이다. 이로써 제주인들의 자긍심을 키워 행복지수가 높아지면 관광객 2000만 명 시대는 저절로 열리게 될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