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민들의 교육열로 탄생한 추자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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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초-올바른 인성 갖춘 인재 양성에 노력
   
제주시 추자면은 전라남도 완도군에 속했다가 1914년 3월 1일 제주군(郡)으로 귀속됐다.
추자도(楸子島)라는 이름은 ‘군도(群島)의 형태가 마치 바다 한 가운데 가래나무(楸) 열매를 흩어 뿌려 놓은 것 같다’해서 유래됐다고 한다.
1922년 제2차 조선교육령이 공포로 종전 1군 1교제에서 1면 1교제로 전환되면서 공립학교 활기를 띠게 된다.
1923년 9월 현 한림초인 구우공립보통학교, 애월초의 전신이 신우공립보통학교, 동남초의 전신인 성산공립보통학교를 비롯 김녕초의 전신인 구좌공립보통학교가 문을 열었다.
이어 추자초등학교의 전신인 추자공립보통학교가 1925년 6월 3일 추자면 대서리 31번지에 설립 인가되고 같은 해 9월 1일 문을 열었다.
▲주민들의 교육열로 인해 설립된 추자초
추자공립보통학교 설립 배경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현재 남아 있는 기록을 보면 추자주민들이 자녀 교육을 위한 학교 설립에 대한 열망을 엿볼 수 있다.
1863년에 작성된 모연문(募緣文·제주교육박물관 소장)에는 “···추자는 넓은 바다의 한 모퉁이에 치우쳐 있어 법도와 예의를 알지 못하고 있으니 계속 이와 같다면 금수에 가까워짐을 어찌 면할 것인가. 선생을 두고 가르치고 벗을 두어 경계하며, 가정에 들어서는 아버지와 형님을 섬기고 사회에 나가서는 웃어른 섬김을 배워야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글 뒤에는 학교설립을 위해 추자도내 주민 및 타지에 나가 살고 있는 주민들의 기부금액이 적혀 있다.
또한 추자초 설립 연혁인 ‘일신재 중수기(日新齋 重修記)에 따르면 지역주민들이 학교 설립의 뜻을 모아 오다 추자로 유배 온 유신(儒臣) 송주성, 김태동, 김제성이 대서리에는 개성학교(開盛)를, 묵리에는 광흥(廣興)학교를 설립했다고 한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과 함께 이 셋은 서울로 돌아가고 개성학교는 폐교된다.
이후 상추자에만 사립학숙식(私立學塾式)으로 교육이 이어지다가 1925년 4년제 2학급의 추자보통학교가 문을 열게 됐다.
이어 1938년 제3차 조선교육령이 공포되면서 그동안 보통학교라는 명칭이 심상소학교(尋常小學校)로 바뀌면서 일본인 자녀들이 다니는 심상소학교라는 명칭과 같아진다.
하지만 추자를 비롯 제주, 서귀, 성산, 한림에는 일본인 자녀가 다니는 심상소학교가 있어 추자공립보통학교는 일본인 심상소학교와 차별을 두어 추자서(西)공립심상소학교로, 일본인 자녀 학교는 추자동(東)심상소학교로 각각 교명이 바뀌게 됐다.
그 후 1944년 4월 1일 추자서국민학교를 거쳐 1949년 4월 1일 추자국민학교로 바뀌고 1996년 3월 1일 현 추자초등학교로 재탄생했다.
▲별 반짝, 학력 쑥쑥 반딧불교실 추자초
추자초는 학생들의 인성교육 및 자기주도적 학습방법 교육을 통해 기초학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방과후 오후 9시까지 ‘반딧불이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교사들이 모두 학교 관사에서 생활하는 덕분에 학생들은 학원에 가지 않고도 직접 담임교사의 지도아래 한자, 영어를 배우고 있다.
한자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 학년을 대상으로 학년별 목교 급수를 정해 반딧불교실은 아침시간과 창의체험활동 시간 등을 통해 교육하고 있다.
특히 추자초는 학생들의 꿈과 끼를 키워 미래를 밝히는 인재로 양성하기 위한 교육시책의 일환으로 ‘재능발표 조회’를 운영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꿈·칭찬·재능·독서’를 주제로 학생들이 친구들 앞에서 주제에 해당한 것들을 발표하면서 발표력과 표현력을 높이면서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다.
조문욱 기자 mwcho@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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