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을 파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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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진 동화작가

난 지난 주말 장서(藏書)들을 정리했다. 교육 전문 서적과 문학 관련 도서들이 대부분일 것 같은 내 서재에는 철학·역사서 외에도 많은 잡지들이 서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비워 내니 한층 넓고 시원한 것을 읽지도 않으면서 소유하려고만 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책들이 있다. 내가 아끼는 서적이라든가 저자들이 자필 서명을 하고 증정 받은 책들은 버릴 수도 없으니 이를 어찌 한단 말인가?

 

그 중에서도 유독 누렇게 퇴색되어 눈길을 끄는 책이 있다. 동·서양의 명언들을 모아 엮은 책인데 ‘영원히 못 잊어’라는 명상록이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당시 같은 마을 여학생에게서 빌린 것으로 기억된다. 아니 먼저 나에게 읽어보라고 권한 책이라 해야 맞다. 얼마 없어 그녀가 도시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돌려주지 못해 그대로 내 장서가 되어버렸다. 그 후 그 책을 읽으며 외로움을 달랬고 내 문학적 감성(感性)을 키우는 데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곧 감성을 파는 사회가 올 것이란 얘기다. 무슨 뚱딴지같은 얘기냐고 할지 모르지만 어릴 적 추억에 가슴 두근거리는 이야기가 생산품처럼 만들어지고 그것을 사고파는 사회가 곧 도래한다는 것이다.

 

덴마크의 미래학자 롤프 옌센이 “정보화 사회 다음에는 어떤 사회가 도래할까요?”라는 질문에 미래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 상상력이 생산력과 직결되는 꿈과 감성을 파는 사회, 즉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를 예언한 것이다.

 

정보화 사회에선 인간들의 감성적인 삶을 배제한 이성적인 삶 때문에 인간성이 상실된 채 살아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옌센의 예언은 적중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오늘날 사회를 보라.

 

전자책(e-book)에 밀려 세계적인 대표 백과사전 브리태니커 종이사전이 사라졌다. 이 어찌된 세상인가? 무섭다. 사람들이 더 이상 종이책을 사지 않는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이제 책도 잃고 정체성도 잃은 채 스마트 기기의 노예가 되었다. 대화는 끊긴 지 오래고 전화할 일이 있어도 조심스럽다. 문자로만 얘기하는 세상이 되었다. 아름다운 풍광도 눈으로 보지 않고 카메라 앵글과 스마트폰으로만 보는 세상이 되었으니 어찌 무서운 세상이라 하지 않을 수 있는가? 정보화 사회가 만들어낸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그래서 옌센의 예언은 더욱 절절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어린 왕자를 쓴 생텍쥐베리는 ‘아이들에게 배를 만드는 법을 가르치지 말고 푸른 바다를 꿈꾸게 하라!’고 했다. 그렇다. 다음에 올 시대는 꿈꾸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미래를 상상하고 그리워하면서 아이들에게 꿈을 꾸게 해야 한다. 그래야 창의력이 발현되고 전자책에 밀려 사라진 종이책들의 전성시대가 다시 온다. 감성을 파는 사회, 꿈과 감성이 조화된 스토리텔링이 최고의 상품이 되는 시대가 되어야 인간들은 잃어버린 자아 정체성을 되찾을 수 있다.

 

4월이 한창이다. 눈길 닿는 곳마다 꽃비가 내리고 꽃 대궐을 이룰 때면 그녀가 생각난다. 50여 년 전 명상록을 쥐어주며 무심히 떠났던 그녀처럼 그렇게 4월도 갈 것이다. 난 지금도 그 책을 들여다보며 혼자만 상념에 젖곤 하지만 이맘때면 더욱 그리움이 고질병처럼 도지곤 한다. 이제 그녀를 찾고 명상록을 돌려주고 싶다. 그래야 모든 상념을 떨치고 노년의 새로운 감성을 되찾을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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