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지 않으면 또 당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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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 소설가
   
늘 하던 일도 어떤 때는 참 하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제가 말하는 칼럼의 주제가 그렇습니다. 저는 국가안전시스템에 대한 전문가도 아니고, 국가적 차원의 재난방지시스템에 대해서는 더욱 모르고, 선박의 안전운행이라든가 해상사고 대처방법 등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살아온 경험으로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압니다.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는 국가안전이니, 재난방지니, 안전보장시스템이니 하는 것들을 거론하기 이전 우리 사회가, 아니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오랜 기간동안 마치 무르익히기라도 하듯 준비해온 가장 ‘한국적인 사고’라는 것입니다.

사고가 있기 얼마 전 이런 농담을 들었습니다. 미국에서 어느날 갑자기 건물이 흔들리거나 무너지면 테러인가 떠올리고, 일본에서는 지진인가 떠올리며, 한국은 부실공사인가 떠올린다는 얘기였습니다. 오래전 성수대교가 그랬고, 삼풍백화점이 그랬으며, 가깝게는 경주리조트 참사가 그랬습니다.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 역시 그렇지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결정적인 사고원인만도 열 가지가 넘지요. 선장이, 승무원들이, 해운회사가, 화물을 어떻게, 평소 무엇을 어떻게, 관리감독기관이 어떻게, 정부가 인허가를 어떻게 했으면, 그렇게 열 가지도 넘는 사고원인 가운데 어느 것 하나만이라도 바로 잡혀 있었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사고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바로 잡혀 있는 것이 없었던 거지요. 모든 것이 ‘늘 해왔던 대로’였습니다. 정부도 국민안전이야 어찌되든 기업편의를 최우선으로 고물배의 수명을 연장해주고, 관리기관도 업주와 한통속으로 고물배의 증설을 허락하고, 탐욕스러운 회사 역시 이윤만 앞세워 안전을 뒷전으로 내팽개치고, 선장과 승무원 역시 나만 살면 그만이라는 식이었던 거지요.

누군가 ‘한국적인 사고’를 이렇게 정의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해일이나 지진과 같은 불가항력의 자연재해 없이도 건물, 배, 비행기, 도로와 전철에서도 무엇이 원인이 됐든 대형사고는 늘 있어왔던 것처럼 필연적으로 터질 수밖에 없고, 사고를 당하는 사람들만 그때그때 자신의 불운으로 그 사고에 선택된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똑같은 사고가 똑같은 방식으로 터지는 걸까요. 국가가 관리를 허술하게 하고 방비를 허술하게 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나라의 주인으로 국민은 책임이 없는 건가요. 이제까지 사고 때마다 내가 당한 사고가 아니니까, 나와 내 가족은 운 좋게 그 사고에서 벗어나고 피했으니까, 국민들 역시 늘 해왔던 대로 그걸 남의 일처럼 여겨왔던 것이지요.

성수대교 붕괴 때 우리가 정말 그것을 나와 내 가족의 일처럼 분노했더라면 뒤이어 일어난 삼풍 사고와 씨랜드 사고, 그리고 얼마 전 경주리조트 사고는 절대 일어나지 않았겠지요. 21년 전 292명의 생때같은 목숨을 앗아간 서해페리호 사고 때 역시 우리가 늘 해왔던 대로 그것을 내 일이 아니라며 가슴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때 온갖 부정과 부실에 대해 국민의 이름으로 분노했다면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가 일어나지 않았겠지요.

방송도 신문도 치유라는 말 함부로 꺼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치유가 아니라 우리 삶을 흔들고 나라를 흔들 듯 제대로 분노해야 합니다. 이제까지 늘 해왔던 대로 분노하지 않으면 절대 고쳐지지 않고, 고쳐지지 않으면 다시 터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 사고에 다음 차례로 나와 내 가족이 선택됩니다.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분노해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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