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과학문명에 대한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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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대우교수
   
“우리는 방사능 오염의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내 손으로 가꾼 푸성귀도 먹을 수가 없고, 아무것도 안심할 수가 없어 절망적입니다.” 연전에 만난 일본 농부는 청중들 앞에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그 피해 규모를 제대로 공개하지 못한다. 정치적 고려 때문일 것이다. 각국의 언론 보도를 보면, 후쿠시마 사태의 뒷수습은 30~40년도 더 걸린다 한다. 비용도 우리 돈으로 최소한 1경 원이 필요하단다.

애초 인류가 핵발전에 눈을 돌리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값도 싸고, 안전하며, 전기 공급도 안정적이라고 믿어서였다. 핵발전은 하나의 꿈이었던 것이다. 1954년 6월 27일, 모스크바 남서쪽 오브닌스크 시에 사상 최초의 핵발전소가 들어섰다. 그 이듬해에는 영국에 그보다 10배 규모(50메가와트)의 상업용 핵발전소도 문을 열었다. 이로써 인류역사는 새로운 전기를 맞는 듯했으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핵발전소는 건설비용이 비싸다. 반감기가 긴 방사능 폐기물의 처리문제는 해답이 없다. 핵발전소에서 발생하는 폐열이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상당수 나라에서는 핵발전소를 혐오시설로 취급한다. 미국 정부가 핵발전소에 대한 건설보조금을 지급중단한지 오래고 영국은 핵발전소에 대한 특별세 부과를 검토 중이다. 이대로 가면 20년 안에 세계 각국의 핵발전소 가운데 30% 정도는 저절로 폐쇄될 것이다.

이런 판국에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에서 또 한 번 대형사고가 터졌다. 유럽의 시민사회에서는 핵발전에 대한 비판이 더욱 거세졌다. 독일 시민들의 반응은 매우 격렬했다. 25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핵발전 반대시위를 벌였다. 같은 달 실시된 독일의 주의회 선거에서는 녹색당이 대승을 거뒀다. 녹색당은 독일 경제의 선두주자인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집권당으로까지 등장했다. 그들은 벤츠와 포르쉐로 대표되는 세계굴지의 자동차산업지대를 녹색산업라인으로 전환하겠다며 기염을 토했다. 당시 독일연방의 집권당이던 기민당도 에너지 전환을 국책사업으로 결정했다. 2050년까지 모든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본에도 일찍부터 한 선각자가 있었다. 다카기 진자부로(高木仁三郞)라는 ‘시민과학자’가 그 사람이다. 그는 대학에서 핵화학을 전공하였으나, 평생을 반핵운동에 바쳐왔다. 처음에는 그도 핵발전을 미래 에너지산업의 총아라 확신하였으나, 산업현장에서 핵문제의 심각한 문제점을 발견했다. 핵발전 시설에서는 방사능 유출이 불가피했는데, 회사는 그 사실을 시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다카기는 방사능 찌꺼기가 ‘죽음의 재’이며, 핵이란 인간이 끌 수 없는 재앙의 불이라 확신했다. 가동을 멈추더라도 핵발전소에서 타고 남은 플루토늄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는 2만4000년이나 걸리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핵은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지만 끄고 싶을 때 끌 수 없는 빵점짜리 기술”이 틀림없다.

본래 핵은 ‘하늘의 불’이었다.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은 별빛은 핵융합의 결과다. 최초 지구를 뒤덮은 방사성 물질의 독성이 사라질 때까지 수십억 년이 걸렸다. 그런 다음 지구상에 생명체가 모습을 나타냈다. 현대인들은 핵의 이러한 맹독성을 망각한 채, 함부로 핵발전소의 스위치를 켰다. 인간의 오만을 드러낸 충격적 사건이다. 다카기의 경고는 수십 년 동안 계속되었지만, 일본인들은 귀를 틀어막았다.

후쿠시마의 재앙은 현대과학문명의 위기를 상징한다. 대안이 어딨느냐고 묻지만 말라. 핵 발전의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아이들의 미래가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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