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악산에 올라서서
송악산에 올라서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신년을 맞이하여 오랜만에 송악산을 찾았다. 거의 1년 만에 다시 찾은 셈이었다. 정상에 올라서니 문득 지나간 일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송악산 산행은 내 자신에게도 여러 가지 의미를 되씹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았다.

송악산은 언제나 말이 없는데, 사람들은 개발이냐, 아니냐를 놓고 마음대로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며 대립해 오지 않았던가. 지금도 송악산으로 진입하는 모퉁이에는 개발 청사진이 담긴 대형 철제 간판이 녹물을 흘리며 우두커니 서 있고 그 뒤편으로는 새로 우회도로를 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송악산에 올라서면, 남쪽으로는 바다 건너 가파도와 마라도가 보이고 동남쪽으로는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이 손에 잡힐 듯 시야에 들어온다. 그리고 몸을 왼쪽으로 더 돌리면 백색의 자태를 뽐내는 한라산도 우러러 볼 수 있다.
잠시 전망이 좋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송악산을 조선시대 초기부터 ‘저리별이오름(貯里別伊岳)’ 혹은 ‘솔오름(松岳)’이라 부르며 봉수대를 설치했던 연유가 쉽게 이해되는 듯했다.

외부로부터의 적의 침입을 마을 쪽으로 재빠르게 알리기 위해서는 통신시설의 입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의 남서쪽 끝자락에 자리잡은 송악산은 봉수대라는 통신시설이 위치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잘 이용했던 선조들의 지혜에는 그저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다.

그 옛날, 선조들은 주민들의 재산과 목숨을 지키기 위해 송악산을 절묘하게 활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가. 어떻게 해서든 송악산을 돈벌이를 위한 장소로만 활용하려는 지혜에 너무 얽매여 있지는 않은가. 며칠 전, 지역 방송국의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신년설계와 포부를 밝히던 해당 지역 군수의 언행이 못내 아쉬움을 남긴다.

신년 초부터 새삼스레 ‘송악산관광지구’ 개발문제를 터트려 지역사회에 다시 파장을 일으키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앞으로 국제자유도시로 성장하려는 제주도의 미래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는 돈벌이를 위한 인위적인 조작과 변형이 가해지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하라’는 자살터 바위의 문구가 강렬하게 되살아난다.

송악산은 학생들의 학습장으로는 정말 그지없이 좋은 장소이다. 송악산에 올라서면, 자연의 오묘함과 위대함을 알게 되고 그저 인간은 자연의 한 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송악산은 2개의 분화구로 이뤄진 이중화산체다. 대한민국내에서도 이중화산체가 형성돼 있는 지역은 울릉도와 제주도 외에는 없다. 이를 근거로 생각해 보면 송악산은 단순히 화산지형을 연구하는 몇몇 학자들을 위해 남겨야 할 자연유산이 아니라 제주도 아니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야 할 일꾼들을 위해 보전돼야 할 자연유산이라는 것이다.

송악산에 올라서면, 황량한 자연의 모습은 물론 그래도 좋다고 거친 환경을 있는 그대로 이용하려는 인간의 노력도 여과되지 않고 눈 속으로 빨려 들어온다.

제1분화구의 한쪽 편에는 좌우로 길게 조성된 초지(草地)에서 소와 말이 풀을 뜯는 한가로운 모습이 펼쳐지고, 깊고 가파르게 형성된 제2분화구 안에는 작고 거친 송이 사이에서 듬성듬성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잡초의 모습이 나타난다.
먼 훗날, 송악산은 제주에서 살아가는 후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