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선진현장을 가다 - (5)독일(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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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경쟁력은 지방에서 나온다

독일의 국가 경쟁력은 지방에서 나온다.
지방분권을 바탕으로 각 도시들이 수십년 동안 자율적으로 키워온 경쟁력이 독일 전체의 힘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단적인 예가 독일에서 열리는 각종 국제박람회다. 전세계에서 해마다 열리는 주요 국제 규모 박람회 중 60%가 독일내 10여 개 도시에서 잇따라 개최된다.

물론 각 주요 도시들이 부문별로 수도 구실을 하며 쌓아온 국제적 경쟁력 때문에 가능하다. 경제수도인 뮌헨과 교육도시인 하이델베르크, 금융수도인 프랑크푸르트와 행정수도인 베를린, 섬유.패션의 중심지인 뒤셀도르프 등지에서 끊임없이 각종 박람회와 국제회의가 열린다.

지리적으로 독일 중심부에 위치한 헤센주의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지방분권을 국가정책으로 추진해온 독일의 지방 도시가 갖는 경쟁력을 대표적으로 볼 수 있다.

상주 인구가 40만명에 불과한 이 도시는 세계적 규모의 스카이라인을 자랑한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독일 상업은행 건물(258m)을 중심으로 주요 증권.보험.은행사들이 빼곡히 도심을 채우고 있다. 또 우리의 한국은행과 산업은행을 비롯해 전세계 주요 금융사들이 이곳을 유럽내 거점으로 삼고 있다. 프랑크푸르트가 이처럼 국제적 금융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정부가 수도가 아닌 이곳에 유럽 최대 거점공항을 짓고 내륙 교통의 요충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독일 중앙증권거래소 홍보 담당자인 랑거씨는 “프랑크푸르트에는 이미 400년 전부터 동물과 책이 교환되는 주요 시장이 형성됐으며 이 과정에서 200종이 넘는 동전들이 모여들면서 금융 중심지 역할을 맡아 왔다”고 밝혔다. 또 랑거씨는 “정부가 이러한 도시 전통을 정책적으로 잘 유지해온 탓에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프랑크푸르트가 국제적 금융도시로 성장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지금도 고층 건물을 짓는 공사가 한참 진행되고 있는 이 도시에서 제공되는 일자리는 상주 인구보다 많은 50만개. 나머지는 인근 전원 도시에서 잘 닦인 고속도로와 철도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인력들로 채워진다. 즉, 도시가 금융수도로서 특화된 기능을 나눠 갖는 탓에 경쟁력을 가질 수 있고 주민들도 교통체증 없이 여유로운 삶을 누리며 직업 선택의 권리를 갖는 셈이다.

독일이 통일되기 이전 행정수도였던 본을 통해서도 독일의 분권.분산 정책이 가져오는 도시 발전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인구 30만명이던 이 도시는 행정부 이전 이후 도시 황폐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현재 상황은 정반대다.

인구는 오히려 40만명으로 늘어났으며 치솟는 물가와 주택난을 걱정할 정도가 됐다. 독일 정부가 행정수도를 이전하면서 본을 각종 국제기구의 중심도시로 키워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중 열리는 각종 국제회의로 도시 전체에 활력이 넘쳐나고 있다. 지난해 대선에서 청와대와 국회의 충청권 이전을 두고서도 수도권이 붕괴된다며 난리를 피웠던 우리로서는 좋은 교훈인 셈이다.

다른 도시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인구 15만명의 하이델베르크도 교육수도로서 기능을 착실히 수행하고 있다. 이 도시에는 대학뿐 아니라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국립암연구센터와 기초과학물리학연구소(막스 플랑크) 등 각종 연구소들이 자리잡고 있다.

물론 하이델베르크시도 독일내 다른 주요 도시와 같이 거대 도시로 성장하기보다는 고속도로로 30분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문화.상업적 기능을 맡고 있는 인구 40만명 규모의 만하임시와 상호 보완적 입장에서 발전을 꾀하고 있다.

하이델베르크시의 외국인 의회 의장을 맡고 있는 강여규씨는 “이곳은 대학 도시로 800년의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며 “예전에는 인문학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의학과 자연과학, 그리고 법학 분야에서 국제적 수준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 도시가 교육수도의 전통을 이어온 것은 정책결정권을 중앙정부가 아니라 지방이 갖고 있고 정부는 지방 도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지원책을 펴온 때문이다.

획일적인 중앙통제가 없는 탓에 시대 흐름과 상황에 따라 생존을 위한 능동적인 변화가 가능한 것이다. 교육뿐 아니라 경제.문화.치안 정책 등 지방 발전과 주민의 삶과 직결되는 대부분을 지방정부가 맡고 있으며 중앙정부는 단순한 조정자 역할에 머물 뿐이다.

이처럼 분권정책을 통해 전국토의 균형 발전을 추진해온 독일에는 인구 100만명 이상의 도시가 베를린과 뮌헨, 함부르크 등 3개밖에 없다. 모든 기능이 전국토에 걸쳐 골고루 분산돼 있기 때문에 특정 도시가 비대해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독일의 대표적 산업인 자동차의 경우 BMW사는 뮌헨에, 벤츠와 포르쉐는 슈투트가르트에 있으며 포드는 쾰른, GM사와 오펠은 뤼셀스하임 등에 나눠져 있는 식이다.

따라서 미완의 성장 지역인 동독 지역을 빼고는 교육이나 일자리를 찾아 주민들이 수도권으로 몰려들고 지방은 갈수록 황폐화되는 후진국형 악순환을 겪을 필요가 없다. 지방화가 세계화란 구호를 내세우면서도 지방 도시의 성장이 아니라 붕괴의 문제에 직면한 우리로서는 독일의 교훈을 다시 한 번 새겨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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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6사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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