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승생 수원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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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메모지에 그린 구상도
어승생댐 건설계획 구체화 계기


박정희 대통령은 1966년 6월 18일 제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정우식 당시 도지사에게 당장 33만 도민에게 급수할 수 있고 축산과 농업용수로 쓸 수 있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며 무진장 물이 숨어 있는 한라산 고지대의 수원 개발 방안 마련을 지시했다.

제주도의 개발에 관심이 컸던 박 대통령은 제주 개발을 이루기 위해서는 심각한 물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은 제주 체류 마지막 날인 6월 20일 정 지사를 숙소인 제주관광호텔에 불러 자신의 구상 내용을 직접 스케치했다.

이것이 바로 제주도수원개발 기본 구상도이다.

호텔 메모지에 사인펜으로 그린 이 구상도는 한라산 계곡의 물을 막아 수자원으로 이용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구상도는 어승생댐 건설계획을 구체화하는 계기를 마련했고, 개발사업은 급속히 추진돼 1967년 4월 21일 기공식이 거행됐다.

어승생수자원 개발공사는 1968년 들어 하와이를 다녀온 박 대통령이 제주도 개발에서 물문제의 시급함을 들어 연내 완공할 것을 지시하고, 예산을 대폭 지원함으로써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한편 어승생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이해 6월 24일에는 일제검거령에 따라 체포된 폭력배들이 국토건설단이라는 이름으로 어승생댐 공사장에 투입됐다.

이들 국토건설단 1진은 제주에서 검거된 39명을 포함해 210명으로, 이후 2진.3진이 도착해 500명으로 늘었다.

이들은 어승생댐 공사장과 제2횡단도로 건설현장에 투입됐는데 빈번한 집단 탈주 등 말썽을 부리다가 4개월 만에 해체됐다.

어승생수자원 개발공사는 계곡에 둑을 쌓아 수원을 모으는 취수언시설, 취수언에서 저수지까지 물을 공급하기 위한 도수로공사, 8000평 면적에 10만6000t의 물을 채울 수 있는 저수지 댐공사, 저수지에서 각 지선에 연결하기 위한 48㎞의 송수관로 공사, 226㎞에 이르는 지선관로 공사로 나뉘어 추진됐다.

1969년 10월 12일 산천단에서 첫 통수식이 거행될 당시 80%의 공정률을 보여, 완공되면 생활용수로 12만명에게 1만2000t, 농축용으로 4만7000㏊에 3만4000t의 물을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이때 저수지 공사는 늦어진 반면 도수로 송수관로 매설이 먼저 이뤄지자 도수로를 통해 저수지 윗부분인 착수정까지 도착한 물을 저수지를 거치지 않고 송수관로로 연결해 지선으로 공급하는 바이패스 방법으로 급수가 이뤄졌다.

한편 저수지는 찰흙과 철판 등을 이용한 누수방지공법이 사용돼 공사시작 3년4개월 만인 1970년 8월 끝났다.

그러나 순조롭게 마무리될 것으로 여겨졌던 어승생수원 개발공사는 이후 시험저수과정에서 두 차례나 저수지 바닥이 구멍나는 홍역을 치러야 했다.

보완공사 끝에 어승생댐 공사가 막을 내린 것은 이로부터 1년 이상 지난 1971년 12월 16일로, 총 12억원을 투입해 4년 7개월28일 만에 결실을 맺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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