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포럼 공직사회의 회의
제주포럼 공직사회의 회의
  • 강영진 기자
  • 승인 2014.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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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전제왕조시대였던 조선의 임금들이 ‘수첩’에 적은 깨알 같은 글을 읽으면, 대신이나 중신들은 다시 수첩에 그대로 받아 적는 어전회의의 모습이 역사의 어떤 기록에도 나와 있지 않다.

 

잇따른 인사난맥상으로 휘청거리는 박근혜 정부의 국무회의가 대통령이 수첩에 적은 메모를 읽으면 이를 받아 적는 장관들의 모습이 TV카메라에 종종 잡히곤 한다.

 

마땅히 국무위원들이 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의 지시를 정확히 숙지하고 이를 충실히 이행해야 함은 물론이다.

 

과거 역사기록을 보면 임금이 주재하는 회의인 어전회의에서 어명을 따를 수 없다고,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잘못된 임금의 명을 이행할 수 없으니 소신의 목을 베어달라고 항명하던 모습들을 종종 찾아 볼 수 있다.

 

임금에 탄핵상소를 올리던 신하들 역시 자신의 주장을 얘기하면서 목숨 걸거나 유배형을 감수하면서 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전제 군주시대도 아닌 민주 공화의 시대에 이런 멋진 모습들이 왜 요즘의 국무회의 석상에서 우리 국민들은 볼 수 없는지 참 아이러니 하다.


조선시대의 참 선비였던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를 통해 높은 지위의 벼슬아치와 낮은 지위의 벼슬아치, 즉 상관과 하관의 관계는 어떻게 하는 것이 본분(本分)인가를 참으로 자세하게 열거해 놓고 있다..

 

즉, “하관에 있는 사람은 마땅히 본분을 삼가 지켜서 상관을 섬겨야 한다.”라는 전제 아래, 하관은 의당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상명하복(上命下服)’이 하관의 본분임도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상관이 바르고 정당할 때를 염두에 두고 하는 내용일 뿐이다. 우리들이 기억하는 옛날의 어전회의 같은 멋진 광경을 생각해보면, 하관은 언제나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만 하는가에 대하여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옛날의 어전회의는 요즘으로 풀어서 말하면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라고 할 수 있다.


다산은 또, 상관과 하관들이 함께하는 회의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엄숙하고 공손하고 겸손하고 온순하여 감히 예를 잃지 않게 해야 하겠지만, 화평하고 통달하여 서로 끼이거나 막힘이 없게 해야 정과 뜻이 서로 공감하게 될 것이다.”라고 예의 바르고 엄숙·공손한 회의 분위기 속에서도 화해와 소통이 제대로 되는 회의를 다산은 바라고 있었다. 상호 간에 의사가 통달되는 회의 분위기를 우리는 보지 못하여 안타까운 생각만 일어납니다.

그래서 다산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사대부의 벼슬살이하는 방법은 언제라도 벼슬을 버린다는 의미로 버릴 기(棄) 한 글자를 벽에 써 붙이고 아침저녁으로 눈여겨보아야 한다. 행동에 장애가 되면 벼슬을 버리며, 내 뜻이 행해지지 않으면 버리며, 상관이 무례하면 벼슬을 버려야 한다.”라고 말하고, “그렇지 않고 부들부들 떨면서 오히려 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하여 황송하고 겁먹은 말씨와 표정이 얼굴에 나타나 있으면 상관이 나를 업신여겨 계속 독촉만 하게 되어 참으로 그 자리에 오래 있을 수 없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옛날 재상들의 위풍당당하던 모습이 그리운 시대이다. 판서나 정승들, 언제라도 벼슬을 그만두고 하향해버릴 자세를 유지하면서, 무서운 임금에게 겁 없이 항의하던 모습, 요즘 TV 뉴스의 국무회의는 왜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까. ‘부들부들 떨면서 황송하고 두려워하는 말씨와 표정이 얼굴에 나타나 있는’ 것만 같이 생각되는 것은 지나친 생각일까.

국회의 인사청문회에서 온갖 비리로 두들겨 맞고서도 하해와 같은 은혜로 장관직에 임명되고서야 어떻게 당당하고 위풍이 있는 회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인사가 만사인데, 요즘의 뉴스에도 또 낙마할 인사 스캔들만 거론되고 있으니 답답할 뿐이다.

 

원희룡 새 도정이 출범했다. 새 출발을 하는 만큼 수많은 회의들이 열릴 것이다. 지사의 의중만 바라보며 순한 양처럼 지시를 받아 적는 회의가 아니었으면 한다. 제주의 미래발전과 하나 된 제주, 오로지 도민만을 위한 충성으로 활발한 토론과 수많은 항명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자신의 자리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항명이 아니라, 제주공동체를 위한 것에 자신의 직을 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새 도정에 희망이 있다.
<강영진 정치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