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끝에 보이는 푸른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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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웅. 동국대 교수 / 문학평론가
   
장마철 풍경

장마철에 접어들어도 마른장마가 지속되더니 어느새 국지성 호우가 물폭탄을 쏟아 붓는다. 모자라도 걱정, 넘쳐도 걱정이라더니 여름 한 철 강수량이 꼭 그렇다. 농부는 논에 물꼬를 터주고 시청 공무원들은 지난해에 넘쳤던 도심 하수구를 새로 정비한다. 그러는 사이 천산만야의 풀과 나무들은 무럭무럭 자란다. 절기도 질서가 있어야 제격인 법이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삶의 축축한 비애를 한 장의 빈대떡으로 달래보는 소시민들의 심사는 제법 풍류에 속한다. 제격이건 풍류건 그런 빗속 풍경이 문득 그립다. 요즘 장맛비는 예측하기 어렵다.

분단의 해소와 민족의 화해를 위하여

윤흥길의 소설 ‘장마’에 보면 빗속 풍경은 ‘제격’도 ‘풍류’도 아닌 하나의 상징이다. 현대사 최고의 비극과 갈등이 압축돼 나타나는 것이다. 한국전쟁 기간 중 외할머니가 할머니 집으로 피난살이를 온다. 두 할머니의 아들들은 국군과 빨치산이다. 소년 화자인 ‘나’에게는 외삼촌과 삼촌이 된다. 전사한 외삼촌을 그리워하면서 외할머니는 문득 비내리는 앞산을 바라보며 바위 새에 숨은 ‘뿔갱이’를 다 쓸어가라고 저주한다. 그 소리를 들은 할머니는 격분한다. 더부살이하고 있는 사돈의 저주는 금기 위반을 넘은 전쟁선포와 다름없다.

여러 과정을 거치며 두 사돈은 화해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는 진술이 소설을 마감한다. 장마의 끝과 함께 사람들 사이의 첨예한 대립도 끝난다.

여기서의 장마는 한 집안의 갈등과 비극적 상황을 암시하면서 한국전쟁의 민족적 아픔을 극화한다. 갈등의 해소와 비극적 아픔의 치유를 통한 화해가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분단극복의 방안이다. 장마철에 문득 이 소설이 생각나는 이유는 우리가 이 소설 속의 갈등과 비극적 상황으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분단 이래 남북한의 대치는 소설 속 ‘빗속 풍경’ 그대로다. 35년 전, 작가가 상징적으로 갈파했던 화해의 요청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통일준비위원회에 바란다

지난주 통일준비위원회가 출범했다. 대통령이 위원장이고 위원이 50명에 이른다.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연구가 이뤄지고 수많은 시나리오에 대한 실무 검토가 진행될 모양이다. 외교적 상황 관리가 막중할 것이다. 그에 못지않게 민족 내부적으로도 준비해야 할 사안들이 많을 듯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해가 중요하다는 점을 이미 한 세대 전에 작가가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두 갈등 주체들은 이념적 판단이나 경제적 득실에 따라 화해하는 것이 아니라 맺힌 감정을 풀어버림으로써 평온에 이른다. 민족화해에도 감정의 영역이 중요한 단초가 된다는 뜻이다.

남과 북이 오래 헤어져서 이념과 관습과 문화가 많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것은 있다. 바로 감정이다. 감정의 교류를 통한 동질성 회복은 막대한 통일 비용을 줄이는 선결과제다. 북한의 인천 아시안게임 참가, 금강산 관광 재개 등 기회는 많다. 통일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지혜롭다면 감정 교류를 통한 동질성 회복을 통일 준비의 중요한 내용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그것이야말로 한용운 시인이 노래한 ‘푸른 하늘’이 아닐까. 명시 ‘알 수 없어요’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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