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리를 옥답으로 만든 김광종 선생
화순리를 옥답으로 만든 김광종 선생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쌀농사 가능토록 자비로 대규모 토목공사 벌여
‘일(1) 강정, 이(2) 도원, 삼(3) 번내’라는 말은 제주에서 쌀농사가 가능했던 마을이자 비옥한 토지를 보유한 순서를 뜻한다.

화순리(번내골)에서 논농사가 가능했던 것은 김광종 선생의 업적이다. 그는 1832~1841년10년 동안 안덕계곡 황개천의 물을 끌어 들이는 토목공사를 벌였다.

전 재산을 내놓아 인부를 고용했고, 둑을 쌓아 저수시설을 만들었다. 계곡 옆구리의 암반을 쪼아내면서 총 연장 670m의 수로를 건설했다.

대공사가 끝나자 16만㎡(약 5만평)의 볼모지가 논으로 바뀌었다. 변변한 연장이 없던 당시, 독한 소주를 바위에 붓고 불을 붙여 돌이 약해지면 깼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지금은 면적이 많이 줄었지만 가을에 황금빛으로 물든 ‘화순 논’을 볼 수 있다.

김광종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는 1938년 화순답회(和順沓會)와 손자들이 공덕을 기리기 위해 마을 입구 소나무 숲에 세웠다.

천수답(天水畓)에 의존한 극히 제한된 논농사를 극복하기 위해 안덕계곡의 풍부한 수량을 이용하려고 벌인 토목공사는 고난을 이겨내려는 지혜와 끈질긴 인내를 보여주고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