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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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당시 기자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한 장면이 있다. 하얀 옷을 입고 머리에 하얀 모자(주케도)를 쓴 외국인이 비행기에서 내려서자 무릎을 꿇고 땅에 입맞춤을 하는 장면이다. 30년 전 한국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였다. 그 장면은 지금까지도 천주교 신자들은 물론 많은 한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국 천주교사에서 역사적인 순간 중 하나로 꼽히는 1984년 5월 3일. 교황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요한 바오로 2세는 기내 영접을 받은 뒤 활짝 웃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환영객에게 손을 흔들며 트랩을 내려온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에 대한 애정과 축복의 표시로 특별기에서 내려서자마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순교자의 땅, 순교자의 땅”이라고 하면서 한국의 땅에 입을 맞췄다.

교황은 이어 도착 성명에서 “한국은 유구한 역사에 걸쳐 시련과 풍파를 무릅쓰고 언제나 새로이 일어설 줄 아는 생명과 젊음에 넘치는 아름다운 나라”라며 “모든 생명이 신성시되고 아무도 소외되지 않으며 억눌리지 않는 모든 이가 진실한 형제애로 사는 그런 사회를 이루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요한 바오로 2세는 논어의 한 구절인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쁨이 아닌가’를 유창한 한국어로 말해 한국인을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그로부터 30년 뒤인 14일 오전 10시16분께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방문의 첫 발을 내디뎠다.

TV를 통해 보여지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종일관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영접을 나온 박근혜 대통령과 한국 천주교 주교단 대표들을 포함한 환영단과 인사를 나눴다.

환영단에는 천주교 신자들 이외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 새터민, 외국인 이주 노동자, 범죄피해자 가족모임 회원, 장애인 등이 포함돼 한결같이 그늘진 곳에서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관심을 보여 온 교황의 평소 모습이 그대로 반영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소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중시하면서 갈수록 극으로 치닫는 개인주의와 물질주의를 경계하자고 주장해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도 공항에 영접 나온 세월호 유족들에게 안타까운 표정으로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직후 “한국민들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윤리적,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기 바란다”고 말했다. 온 나라가 슬픔에 빠진 상황에서 조심스러운 표현이었지만 물질과 경쟁에 함몰돼 인간성을 잃어가는 한국 사회를 향한 무거운 비판이었다.

교황은 방한 기간에 세월호 참사 생존자와 유족을 따로 만난다.

교황은 제주의 강정마을 주민들도 만날 예정이다. 또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기다리며 오랜 세월 고통 속에 살아 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용산참사 유족,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을 하는 밀양 주민들과도 만난다.

이런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에 대해 정치권은 우리 사회의 상처받은 이웃에게 큰 위로가, 정치권에는 화합의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치권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아니 전 세계가 소외받은 이웃에는 위로를, 갈등이 있는 곳에 화합과 평화를 기대하고 있다.

이런 기대는 우리 사회가 무한 경쟁과 이기주의 속에서 소외받은 이웃을 외면하고 있고, 타인에 대한 배척과 불평등이 만연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전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것은 바로 이런 잘못된 점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종교적 관점을 떠나 대한민국에서 이런 지도자를 보고 싶다.

부남철 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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