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선진현장을 가다 - (6)미국(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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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에는 '국가의 간섭'이 없다

지방정부 세율 조정 등 모든 사항 통제
연방정부 역할은 국방·외교에만 국한
각 정부 수평적 역학관계 유지·발전


미국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 뉴욕시가 미국의 수도가 아니라는 사실은 상식이다.

세계 경제의 수도로도 불리는 미국 최대의 도시 뉴욕시는 그렇다고 뉴욕주의 수도, 즉 주도도 아니다.

인구 750여 만명이 몰려 있는 뉴욕시에서 북쪽으로 220㎞ 가량 떨어져 있는 인구 10만여 명의 소도시 올버니가 바로 뉴욕주의 주도다.

미국 최대 도시 뉴욕시는 결국 한 주의 행정중심지도 아닌 하나의 지방도시일 뿐이다. 행정과 정치의 중심지가 곧 경제와 문화 등 모든 분야의 중심 도시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한국적 시각으로는 이 같은 상황을 쉽게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지방도시’에 불과한 뉴욕시는 독자적으로 항만을 비롯한 기반시설 확충과 기업 지원 방안 등 발전 방안을 마련하며 미국 최대 중심 도시로서 위상을 거뜬히 유지해 나가고 있다.

주정부는 다만 주 전체 통치에만 관심을 가질 뿐 개별 도시 운영에는 관여하지 않고 있으며, 지방도시는 도시 운영에 필요한 대부분 권한을 갖고 있어 굳이 주정부 권력의 중심에 있지 않더라도 불이익이 없다.

거대 도시 뉴욕시의 위상과 비교하자면 미국의 수도 워싱턴D.C.(특별구)는 대통령과 의회, 연방정부기관들이 모여 있는 미 행정과 정치의 중심지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한다. 연방정부 역시 외교와 국방 등 국가적 권한만 제한적으로 가질 뿐 개별 지방정부에 대해서는 영향력을 거의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교육 부문을 보면 미국은 연방정부에 교육부를 두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의 권한은 재정 지원과 각종 교육프로그램 개발 등 교육 지원에 국한된다. 대학부터 시골 초등학교 운영에까지 일일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국 교육인적자원부의 막강한 권한에 비하자면 미국 교육부의 역할은 미미하기 그지없다. 미국의 학교 역사가 200년이 넘지만 연방 교육부는 불과 20여 년 전인 1979년에야 설치됐을 정도다.

대신 주정부가 각급 학교별 교육연한 등 큰 틀의 교육정책을 독자적으로 결정한다. 이래서 초.중.고등학교의 교육제도는 주마다 제각각이다. 직접적인 학교 운영과 관련한 대부분 권한은 지방정부 교육감과 교육위원회의 몫이다.

행정적 개념으로 변방에 불과한 뉴욕시가 미국 경제.문화 중심지로서 흔들림없이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연방 또는 주정부의 법적 테두리내에서 철저히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독자적으로 도시 운영을 책임지고 발전 방안을 찾는 것이다.

뉴욕시의 경우 민선 시장과 의원 51명으로 구성된 시의회가 도시 운영을 전담한다. 시정부는 연간 무려 450여 억달러에 이르는 시정부 예산을 부문별로 자율적으로 집행하고, 부동산세.재산세.소득세 등 지방세 세율을 독자적으로 조정해 시 재정의 상당분을 충당한다. 지역내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 등도 중앙정부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부여할 수 있다. 주민이 선출한 감사원장이 시정을 감시하고, 민선 검찰총장이 시 헌장을 위반한 범죄를 단속한다. 시정부에는 직원이 2만여 명에 이르는 시경찰국(NYPD)이 소속돼 있다.
‘반쪽 자치’에 그치고 있는 한국의 지방정부 상황에 비춰본다면 거의 전권이 지방정부의 몫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미국은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이라는 공식 국가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연방제 국가다. 연방정부는 국방, 외교, 각주 간 관계 조정 등 국가적 통치와 관련된 사항에 관한 권한만 부여받고 주정부는 연방정부의 권한을 제외한 나머지 권한을 모두 갖는다. 따라서 형식상 상위 정부인 연방정부가 주정부를 통제할 수 있는 사항은 연방헌법에 의거해 연방정부에 권한이 부여된 사항에 한정된다.

이 같은 연방제 이념에 따라 주정부는 주헌법을 정해 다시 지방정부조직권, 인사, 의회, 조세, 상.하수도, 법원.검찰.경찰권 등 지역 통치와 운영에 필요한 대부분 권한을 지방정부의 몫으로 돌리고 있다.

이에 따라 각 주정부는 외교권과 교전권 등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주권국가가 보유하는 거의 모든 독자 권한을 보유한다. 이 때문에 주마다 혼인 및 음주 가능 나이부터 범죄 성립 요건에 이르기까지 각종 제도와 규제가 제각각이다.

지방자치국제화재단 뉴욕사무소 조윤명 국장은 “미 연방헌법 정신은 연방정부가 주정부에 일정 권한을 떼어준 것이 아니라 거꾸로 독립된 주권을 가진 각주가 국가 방위 등을 위해 권한의 일부를 연방정부가 총괄 대리할 수 있도록 위탁하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주 LA카운티법원 태미 정 유 판사는 “미국 연방제는 권력의 중앙 집중으로 인한 독재와 지역 불균형 등 중앙집권체제의 극단적 폐해를 직접 경험한 영국 등 유럽 이민자들이 선택한 가장 민주적이고도 효율적인 정부 형태”라면서 “각 지방정부는 지역 실정에 맞춰 독립적인 행정을 펼치며 연방 또는 주정부의 간섭에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각급 정부는 고유 권한 침해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메인주와 메릴랜드주 등 미국 북동부 9개 주정부는 최근 미 연방 환경보호국(EPA)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연방 환경보호국이 최근 제조업체 등이 스모그, 산성비 등의 배출을 억제하기 위해 법적으로 요구되는 정화시설을 증설하지 않고도 공장을 확장할 수 있도록 연방 차원에서 산업오염물질 규제를 완화키로 결정하자 연방정부의 권한을 넘어선 조치라며 반발하고 나선 것. 9개 주정부는 이 같은 조치가 엄격한 환경보호조치를 채택해 지역 주민의 건강권을 보장하려는 주정부들의 노력을 훼손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며 정면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의 연방정부, 주정부, 지방정부는 각자 고유 권한을 갖고 수평적 역학관계를 유지하며 독자적인 국가기관으로 발전해 왔다. 미국에는 현재 50개 주에서 모두 3만9000여 개의 지방정부가 각 지역을 사실상 독립적으로 운영해 나가고 있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으로 미국에서는 ‘지방 분권’이라는 용어 자체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미 공화당 에드워드 로이스 연방 하원의원 보좌관 영 김씨는 “미국 시민들은 물론 행정가들에게조차 ‘지방 분권’은 개념을 좀체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라며 “지방 정부가 처음부터 고유 권한을 가졌기 때문에 각 정부의 운영방식과 권한의 범위에 대한 개념만 갖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LA시 돈 류 부시장은 “미국의 연방제는 각 지방정부가 자신들의 지역적 특성과 지역 주민들에게 가장 적합한 운영 방식을 선택할 수 있게 해 지역 주민들에게 가장 이로운 정부형태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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