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교포가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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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언론학 교수
   

7년간의 미국 유학생활 동안 인종차별을 느낀 적은 많지 않다. 한국인이 선호하는 주립대학이 대부분 소도시에 위치한 데다 주민들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대학도시라 외국인들에 대해 비교적 호의적이다. 그런 내가 가장 놀란 것은 여름방학을 맞아 미국 남부를 여행하던 중 일어났다. 미시시피 어느 시골에서 자동차에 가솔린을 넣은 뒤 화장실을 찾은 나는 깜짝 놀라게 된다.

 

화이트(white)라고 쓰인 화장실이 전면에 있고, 컬러(colors)라고 적힌 화장실은 주유소 건물 뒤편에 있었다. 뒤편 화장실은 불결하기 그지없었다. 잠깐 망설이다 우리 가족은 백인 화장실을 이용했다.

 

다행히 주유소 측에서 시비를 붙지 않아 무사히 빠져 나왔다. 그러면서 나는 여행 내내 흑인들의 슬픔을 생각하게 된다. 남북전쟁이 끝난 지 150년이 지났지만 美 남부 오지에 가면 아직도 이 같은 행태가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에서 남부는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말을 넘어서 복잡미묘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노예해방, 남북전쟁 패배 등으로 인해 남부는 양키(북부)에 대해 뿌리깊은 증오감을 가지고 있다.

남부에 대한 북부의 경멸은 백인들 사이서도 심하다. 북부 백인들은 게으른 남부 백인을 일컬어 화이트 트래쉬(white trash), 레드 넥(red neck) 이라고 비웃는다, 말 그대로 ‘쓰레기 같은 사람’이란 뜻이다.

 

‘레드 넥’은 ‘목덜미가 빨갛게 익었다’는 의미로 볕에 탄 무지한 백인 단순 노동자를 뜻한다. 또 남부의 여러 주들을 두고 바이블 벨트라고 비웃는다.

 

창조론을 지지하는 골수 기독교인를 비하하는 말이다. 실제로 앨러바마, 미시시피 등 남부인들은 기독교에 대해 대단히 민감하다.

 

그래서 놀랄 때 급히 나오는 “오 마이 갓”조차도 불경스럽다며 문제삼는 이도 있다. 반대로 골수 남부인들의 양키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 또한 만만찮다. 필자가 남부 어느 대학에서 열린 세미나 중 뉴욕 타임스 기사를 인용하자 양키신문을 언급 말라는 일부 참석자들의 항의에 당황했던 기억도 있다.

불과 195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남부는 북부에 싼 원료를 공급하고 가공품을 비싼 값으로 되사는 전형적인 식민지형 경제였다. 정서적·문화적으로 북부에 대해 우월주의에 취해 있던 있는 남부로서는 엄청 자존심 상하는 구조였다.

 

남부가 성장한 것은 1970년대 후반. 독일과 일본의 자동차 공장들이 크게 기여했다. 현대, 기아차도 남부에 똬리를 틀어 이 지역 경제발전에 단단히 한몫하고 있다. 남부 주들이 점차 살만해졌고 ‘양키들이 목화밭을 구경오던 시절에서 이제는 살기 위해 남부로 온다’는 말들이 떠돌기 시작한다.

 

 

이와 함께 남부의 가난한 흑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대거 북쪽으로 이주한다. 미주리, 네브래스카 등등 중북부 공장지대가 커지면서 남부 흑인들의 대규모 인구 유입이 시작된 것이다.

흑인 시위사태로 지구촌의 관심을 모은 미주리 퍼거슨시도 이 같은 흐름의 중심에 있다. 일자리를 찾아 몰려 든 흑인 인구가 급증, 전통적인 백인거주 지역이 무너지면서 흑백 간의 갈등이 심화된 것이 이번 사태의 숨겨진 원인쯤 된다.

 

문제는 백인에 대한 흑인들의 적대감이 점차 동양인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태평양 건너 퍼거슨시의 상황은 미국 생활을 경험한 나로서는 남의 일 같지 않다. 불탄 가게를 무대로 한국 TV와 인터뷰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교포들의 모습에서 나는 그들의 외로움, 고통 등을 실감한다. 초록이 야위어져 가는 구월, 태평양 건너 들려오는 한 교포의 울음소리에 나는 오늘밤 잠을 뒤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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