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순력도에 그려진 제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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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말산업과 미래 비전-1.말의 고장 제주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는 조선 숙종 28년(1702년) 이형상 제주목사가 제주 전역을 순찰하며 화공 김남길에게 지시해 그린 화첩이다. 곳곳의 지리와 풍속, 방어시설을 비롯해 조정에 진상하기 앞서 말을 점검하는 장면이 담겼다. 제주시가 1999년 발간한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영인본을 참고로 말을 점검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들을 정리했다.

▲산장구마(山場驅馬)
1702년 10월 15일 산장(山場)에서 말을 몰아 일정한 장소에 모으고 마필 수를 확인하는 장면이다. 당시 제주판관, 감목관, 정의현감이 참여한 가운데 결책군(목책을 만드는 군인) 2602명, 구마군(말을 모으는 임무를 맡은 군인) 3720명, 목자(직접적인 말 관리자)와 보인(목자의 경제적 기반 일부를 지원하는 사람) 214명이 동원됐다.

성판악 남쪽에서 진행된 이날 행사는 남북으로 약 40리, 동서로 약 60~70리 규모의 넓은지대에서 말 2375마리를 점검하는 행사였다.

▲공마봉진(貢馬封進)
1702년 6월 7일 실시됐다. 진상에 필요한 말을 각 목장에서 징발해 관덕정에서 제주목사가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광경을 그린 그림이다.

점검은 관덕정 앞에서 이형상 제주목사가 입회한 가운데 실시됐다. 목자들이 자기가 관리하는 말들을 이끌고 목사 앞을 지나며 점검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조천조점(朝天操點)
1702년 10월 20일 이뤄졌다. 군사훈련과 2소장의 말을 점검하는 그림이다. 조천진의 위치와 연북정을 비롯한 진 내 건물 배치 상황, 민가 위치 등이 자세히 담겼다.

조천진 소속 군사 423명의 군기와 목장의 말 505필, 목자 87명을 점검했다.

말을 취합하기 위해 만든 원형목책과 취합된 말들이 1마리씩 통과할 수 있게 만든 좁은 목책 길(蛇場)이 표시돼 있다. 사장은 말 수효 파악과 필요시 말을 한 마리씩 잡을 수 있게 된 장치다.

▲우도점마(牛島點馬)
이형상 목사가 1972년 7월 13일 우도에서 목장에 있는 말을 점검하는 그림이다.

이날 점검한 말은 262필이며 이들 말을 관리하는 목자와 보인의 수는 23명이다.

우도의 모습은 성산일출봉을 향해 있는 동두(東頭)라고 표기된 곳을 머리로 해 소가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당시 우도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민가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우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이원조 목사가 조정에 장계를 올려 우도 목장의 개간을 허락받은 1438년경부터이다.

▲대정조점(大靜操點)
1720년 11월 10일 이형상 목사 일행이 대정현성을 찾아 군사훈련과 제반사항을 점검하는 장면이다.

원으로 둘러싼 성 내부에 객사, 군기고, 향청, 관아, 관청 등의 건물 위치가 표시돼 있고, 과리들이 말을 준비해 목사 일행을 기다리는 모습이 사실감있게 묘사됐다.

이날 이 목사는 말 849필과 목자 및 보인 123명, 군사들의 훈련 상황 등을 점검했다. 당시 대정현은 읍내 1리, 동면 9리, 서면 2리 등 모두 12리에 797가구가 살았다.

탐라순력도에는 이 외에도 별방조점(別防操點), 정의조점(旌義操點), 서귀조점(西歸操點), 명월조점(明月操點), 애월조점(涯月操點) 항목 등에 말을 점검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김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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