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 꿈 이뤄주기 위해 의경들이 재능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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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라분교 김영주군
   

“도민 여러분의 꿈은 무엇입니까? 제주일보가 그 꿈을 응원하겠습니다.”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가슴 벅찬 환호성이 있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국민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한 마음으로 염원했던 함성은 꿈만 같던 현실을 눈앞에 펼쳐지게 만들었습니다.
그 뜨거운 열정을 보면서 우리는 새로운 희망의 싹을 틔우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습니다.
꿈꾸는 사람들의 열정은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임에 틀림없습니다. 꿈을 이뤄내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어 한계를 극복해가는 열정은 개인적인 꿈의 크고 작음과 내용을 떠나 가장 가치있는 삶의 활력소입니다.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그리고 미국이 위대한 나라가 되려면, 이 꿈이 실현돼야 합니다.”
현대 미국을 만든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는 흑인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3년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에서 밝힌 기념비적인 연설에서 강조했던 말입니다.
‘오늘 어려움에 직면해 있고, 내일도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지라도, 나는 여전히 꿈을 갖고 있다’는 그가 남긴 의미있는 교훈은 ‘꿈이 이뤄질 것이라는 희망이 세상을 바꾼다’는 진리를 되새기게 합니다.
물론 모든 꿈이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살아가다 보면 여러가지 여건 변화로 꿈이 바뀔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꿈을 포기해야 하는 좌절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여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이뤄내기 위한 도전은 더욱 건강한 세상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희망의 싹을 틔웁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소중한 꿈을 버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예로부터 변방의 섬이라는 척박한 토양을 딛고 세계 속의 제주를 일궈내는 강인함을 보여준 제주인들의 역사는 꿈을 이루기 위한 삶 그 자체였습니다.
이는 현재 제주의 밑바탕이 됐고, 제주일보는 그 꿈을 이어받은 제주인들을 응원합니다. 나이와 직업을 떠나 맡은 자리에서 꿈을 이뤄내기 위해 열정을 쏟는 도민들을 만나 그들의 희망 스토리를 담겠습니다. 또 멘토 후원자를 연결시켜 주는 다리 역할에도 충실,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그 첫 번째로 섬 속의 섬, 최남단 마라도에서 꿈을 키워가는 ‘김영주군’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이번 기획 연재에 도민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과 관심, 후원을 부탁드립니다.<편집자 주>

<마라분교 김영주군 이야기>
“축구선수가 되고 싶고, 프로게이머도 하고 싶어요.”

최남단 학교인 마라분교에 다니는 5학년 김영주군(11)은 박지성 선수와 같은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 한다. 소식을 들은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와 제주농협은 지난 7월 축구공과 운동용품을 후원했다.

그런데 전교생은 김영주 어린이 한명 뿐. 유일한 선생님인 김진애 분교장은 여교사여서 체육시간에 같이 축구를 할 수 없는 처지다. 간혹 동네 아저씨들이 공을 함께 차주지 않으면 연습할 기회가 없다.

2003년 마라도에서 태어난 영주는 외로움에 익숙해졌지만 ‘나홀로 축구’로 꿈을 키우기란 쉽지 않다. 벽을 상대로 공을 차봐야 혼자라는 무게감만 더할 뿐이다.

비록 가상의 세계이지만 ‘피파 온라인’ 게임은 축구의 재미를 알려줬다. 세상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대화도 나눌 수 있는 인터넷 게임을 하다 보니 장래 희망이 하나 더 늘었다. 최고의 프로게이머가 되는 것.

2학기를 맞이한 섬 소년에게 꿈을 이룰 한 줄기 희망이 찾아왔다. 축구와 과외지도를 함께 해줄 형들이 2명이나 생겼다.

서귀포경찰서 마라치안센터에 배치된 송민건(23)·임정규(23) 의경은 매주 월·수요일마다 마라분교에서 재능 기부를 하고 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송 의경과 재학 중에 컴퓨터자격증을 취득한 임 의경은 영주의 과외 선생님이자 축구 코치가 돼주기로 약속했다.

영주를 친동생처럼 대하며 미술과 컴퓨터를 가르쳐주고, 서로 어울려 공을 차다보니 섬 마을 학교는 활기가 넘쳐나고 있다.

송 의경은 “재학 중에 해왔던 재능 기부를 계속하기 위해 마라도 근무를 지원했다”며 “치안 업무 때문에 영주와 오래 놀아주진 못하지만 밝고 씩씩하게 자랄 수 있도록 보살펴주겠다”고 말했다.

임 의경은 “인터넷 게임에 소질을 보이는 영주를 위해 다양한 컴퓨터 정보와 지식을 가르쳐 주겠다”고 밝혔다.

방과 후 수업에는 이들 의경뿐만 아니라 원어민 강사와 피아노 강사가 영주를 위해 매주 한  차례 분교를 방문하고 있다. 모슬포항에서 배를 타고 오려면 30분이 소요되지만 한 아이를 위해 3년 째 묵묵히 봉사하고 있다.

영주는 매주 금요일마다 대정서초등학교에 가서 학습 교류체험을 받고 있다. 학교에서 예·체능 수업을 받으면서 섬에서는 만날 수 없는 친구들을 사귀고 있다.

무엇보다 섬 소년의 위대한 스승은 어머니 김은영씨(45)다.

마라도 출신으로 동갑내기 남편 김춘광씨와 결혼한 2001년 그 해 섬에 정착했고, 2년 뒤 영주를 낳았다. 해물 자장면을 파는 바쁜 생업에도 불구, 2006년부터 마라분교 보조교사를 맡고 있다.

매일 분교로 출근해 아들이 수업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보조역할을 하고 있다. 분교장이 출장 가는 날에는 대신 아들을 가르치고 있다.

학교 급식이 없는 점을 감안해 아들의 점심 도시락을 챙기는 것도 주요 일과다. 지난 2월 졸업한 정수현양 몫까지 도시락을 챙겨주는 등 분교를 위해 남다른 애정을 쏟아 있다.

어머니 김은영씨는 “영주가 또래들처럼 수업시간에 ‘저요, 저요’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때가 있다”며 “하지만 영주가 외롭고 힘들지 않도록 주위에서 따뜻하게 보살핌을 베풀어주면서 꿈을 키우면서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6년 2월에 졸업을 하는 영주는 고모가 살고 있는 제주시 지역 중학교에 입학할 예정이다. 주민등록 상 마라도 인구는 112명이나 실제 거주 인구는 60명인데 취학 아동은 없다.

1년 반 뒤 영주가 졸업하면 마라분교는 개교 58년 만에 문을 닫게 된다.

<최남단 마라분교는?>
1958년 개교한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는 재학생이 많을 때는 20여 명이 있었으나 1991년에는 2명의 여학생이 모두 전학을 가려해 학교가 문 닫을 위기에 놓였다.

학교당국과 섬주민들은 우리나라 최남단 교육기관이라는 점을 들어 학부모와 학생을 설득, 잔류하도록 했다.

1994년 이들 여학생 2명이 졸업을 하면서 또 폐교 위기를 맞았고, 당시 취학 아동을 둔 교사를 발령시키는 대안까지 나왔다.

다행히 이 학교 출신으로 해녀인 김정미씨가 취학아동인 딸(당시 7세)과 아들(6)을 데리고 마라도로 이주, 명맥을 잇게 됐다.

1995년 2명, 2000년 1명, 2001년 1명, 2007년 2명이 졸업한 후 지난 2월 이 학교 89번째 졸업생인 정수현양(12)이 서귀포시 대신중학교로 진학하면서 김영주군만 남게 됐다.

한편, 지난해 상반기 기준 전국 초등학교 6203개교(분교 포함) 가운데 마라분교처럼 학생이 1명이 학교는 144개교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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