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도예 체험 학습장으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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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신도초등학교
일제 강점기 시절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주민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은 어느 마을 못지 않았다. 마을에 교육기관이 없다고 해서 그냥 주저앉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학부모들은 자녀 교육을 부탁하기 위해 3,4㎞ 떨어진 무릉소학교 교무실을 찾았고 학생들은 학생들 나름대로 책과 공책을 보자기에 싸고 새벽잠을 설치면서 배움터를 찾아 나서야만 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전도적으로 교육에 대한 관심이 일기 시작했다. 신도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마을 유지들을 중심으로 학교 설립 문제가 논의됐고, 마을에 학교가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신도공립국민학교설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되기에 이른다.

결국 1946년 9월 1일 신도공립초등학교 설립 인가를 받고 같은 해 12월 6일 학교가 문을 열었다.

개교 당시에는 향사(지금의 마을회관)가 교실로 이용됐다.

1950년 학교명이 신도국민학교로 바뀐 이후 1951년 2개 교실 신축, 1955년 보흥분교장 설치, 1957년 7개 교실 신축, 1974년 부지 확장, 1980년 5개 교실 신축, 1980년 교문 이설, 1982년 병설유치원 개원 등의 역사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보흥분교장은 통학거리가 멀어 불편을 겪고 있는 신도2리 1,2학년 학생들을 위해 설치됐는데 학생 수 감소로 1984년 3월 1일자로 폐장됐다.

1985학년도 새마을 최우수 학교로 선정되며 문교부장관 표창을 받으며 전국적으로 주목을 끌었던 신도국민학교는 1996년 3월 1일자로 신도초등학교로 명칭이 변경됐지만 세월의 변화를 비켜설 수 없었다.

1987년 174명이던 학생 수는 10년 뒤인 1997년 54명으로 감소했다.

1997년 2월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과 지역 주민들이 합의한 ‘1998년도에 재학생이 55명 미만이 되면 어린이 교육의 정상을 기하기 위해 무릉초등학교로 통합하기로 한다’는 합의에 따라 신도초등학교는 1998년 3월 1일자로 무릉초등학교에 통폐합됐다.

47회까지 배출된 졸업생은 남학생 1136명, 여학생 1010명 등 총 2146명이다.

학교는 문을 닫았지만 교실로 사용됐던 옛 건물과 세종대왕상, 이순신 장군상, 반공소년 이승복상 등 과거 ‘배움의 터’ 였음을 알리는 흔적 남아있다.

또 옛 교문 인근에는 이 학교 출신인 프로골퍼 양용은이 2009년 10월 31일 방문해 기념식수를 한 나무와 표지석도 방문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신도초등학교는 폐교된 후 3년 간 방치되다 대구 출신 도예가 부부가 2001년 건물을 임대해 도예원으로 운영하면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도예 체험학습장으로 거듭났다.

‘산경도예’라는 간판이 내걸린 이곳에는 작업실(공방), 전시판매장, 교육장, 전통가마 등을 갖췄는데 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도자기, 테라코타, 토우 제작 체험 및 판매, 전통가마체험, 물레돌리기 체험 등의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요즘은 제주올레 12코스를 걷는 올레꾼들 사이에 도예 작품을 감상하다 그늘이 잔디밭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옛 교문 인근에는 1998년 3월 무릉초등학교에서 세운 ‘배움의 옛 터’ 표지석이 학교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곳은 신도초등학교의 배움의 옛 터입니다. 학구민의 정성으로 마련된 부지에 1946년 개교해 52년 간 푸른꿈을 키우며 배움의 꽃을 피우다가 아쉽게도 학교에 다닐 어린이가 주어들어 제47회 졸업을 마지막으로 1998년 2월 28일 문을 닫으며 무릉초등학교에 통합되었습니다. 그 동안 배움의 횃불을 오랫동안 밝혔던 자리임을 기리기 위해 이 비를 세웁니다.’
<김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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